고려장: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11번째 줄:
 
== 음모론 ==
고려시대에[[고려시대]]에 화장이나, 순장, 풍장 등은 있었지만 고려장은 없었으며 문화재가[[문화재]]가 무덤에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일본인들이[[일본인]]들이 무덤을 파헤치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는 조선인들을[[조선인]]들을 설득하기 위한 핑계로 고려장을 내세웠다는 주장이 포함됐다.
 
고려시대에는[[고려시대]]에는 반역죄와 함께 불효죄를 엄벌하고 충효를 중시했다. 《[[고려사]]》에 “조부모나 부모가 살아있는데 아들과 손자가 재산을 달리하고 공양을 하지 않을 때에는 징역 2년에 처한다”고 하였다. 또한 국왕이 효행이 있는 사람과 노인들에게 잔치를 베풀어주고 선물을 주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고려장’에 대한 이야기는 일제 때 일본인들이 무덤을 도굴하기 위해 날조해 퍼뜨린 유언비어라고 밝혀 낸 것은 충주문화방송이다. 이른바 부모를 내다버린다는 ‘고려장 이야기’는 심의린이 일제 때 쓴 〈조선동화대집〉의 ‘노부를 내다버린 자’라는 내용이 한국에서는[[한국]]에서는 처음이고, 일제의 극심했던 도굴 시점과 일치하던 때다.
 
지게에 지고 노모를 버린 아비의 아들이 다시 아비가 늙으면 져다 버린다 해서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는 원래는 [[중국]]의 〈효자전〉이 원전이고, 사신이 문제를 내고 버려진 노모가 풀었다는 〈어머니의 지혜〉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인도]]의 〈잡보장경〉 ‘기로국연조’가 원전이다.
21번째 줄:
‘인생 칠십 고려장’이라는 말도 [[당나라]] 시인 [[두보]]의 〈곡강시〉 중 ‘인생 칠십 고래희’가 음이 비슷하여 와전된 것이고 중국인 손목이 지은 〈계림유사〉에 “고려에는 노부모를 방에 가두고 음식을 넣어 주는 풍습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산 부모를 산에다 버리는 것과는 다른 것으로, 치매노인이나 요즘처럼 역병에 걸린 사람을 집안에서 격리한 모습을 적은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인]]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에는 집안이 극빈한 자식이 부모의 장례를 지내지 못하고 주검이 까마귀밥이 되게 하는 풍장을 소개하였는데, 살아 있는 노부모를 죽도록 내다버렸다는 내용과는 분명하게 다르다는 이유에서 음모론이 더욱 설득력을 갖게 하고 있다.<ref>[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2512046 일제 잔재 '고려장' 이라는 말] 중앙일보(2014.05.04) 기사 참조</ref>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