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바뀜

31 바이트 제거됨, 5년 전
편집 요약 없음
{{출처 필요|날짜=2014-05-12}}
{{다른 뜻 넘어옴|진나라|조사=는|다른 뜻|진나라 (동음이의)}}
{{다른 뜻}}
{{다른 뜻|진 (춘추 전국)|[[전국 시대]]를 통일한 나라|춘추전국 통일 이전의 나라}}
{{옛 나라 정보
[[기원전 247년]]에 즉위 한 영정은, 이사(李斯)를 승상에 임명하고 국력 증강에 노력했다. [[기원전 223년]]에 진나라의 최대의 적인 [[초 (춘추전국)|초나라]]를 멸망시켜, [[기원전 221년]]에 중국을 통일해, 스스로 [[황제]](첫 황제이므로, 시황제라고 한다)를 자칭했다. 이 황제의 칭호는, 중국의 전설상의 성왕인 [[삼황오제]]로부터 따온 것이다.
 
[[시황제]]는 도량형·문자의 통일, 군현제의 실시등 여러가지 개혁을 실시했다. 또, [[흉노]] 등의 북방 기마민족에게 침략을 대비 하기 위해서 각각의 나라가 독자적으로 만들고 있던 장성을 정비해 [[만리장성]]을 건설했다. 만리장성의 건설은 주로 농민들의 강제적인 노동에 의해 진행되었으므로, 가혹한 노동과 극도의 법치주의에 국내는 불만이 높아지는 바람에 반란의 싹을 길렀다. 시황제는 흉노의 침략이 일어나자 다시 북쪽으로 공격을 하므로써함으로써 백성들에게 입혀지는 피해를 최소화시켰다. 게다가 남쪽으로도 원정대를 보내서, 현재의 [[베트남]] 북부까지 영토를 펼쳤다. 이 때, 남방에는 남해, 상, [[구이린 시|계림]]의 세 개의 군이 놓였다. 이것은, 중국 왕조에 의한 남방 지배의 시작이기도 하다.
 
시황제가 기원전 210년에 사망하자, 벼슬아치들은 시황제의 사후, 환관 [[조고]](趙高)가 태자 부소(太子扶蘇), 승상 이사나 시황제의 혈족자 등 권력자를 차례차례로 암살해, 어리석은 2세 황제를 허수아비 황제로서 권력을 제멋대로하게 하고 폭정을 하였다. 시황제의 사후 진나라는 혼란해져서, 다음 해에는 [[진승]], [[오광]]의 반란이 발발,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소란 상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