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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털루 전쟁]] 종전 직후 유럽을 중심으로한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확대에 따라 세계 각지의 전통적인 국가들은 몰락하였다. 아프리카에 있던 [[이페]], [[에티오피아]], [[만딩고 제국]], [[송가이 제국]], [[다호메이]], [[콩고 왕국]], [[모노모타바 왕국]], [[보르누 왕국]]과 같은 여러 나라들은 식민지로 전락하였고<ref>모리무라 무네후유, 신은진 역, 대항해시대, 들녘, 2007, 71 - 73쪽</ref>,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제국이었던 [[청나라]]는 점차 서구 열강의 침략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아편 전쟁]] 이후 반식민지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ref>허원, 〈아편전쟁을 다시 본다〉, 《역사비평:1997년 겨울호》, 역사문제연구소, ISBN AAB1997120</ref> 일본은 [[1853년]]에 우라가 앞바다에 나타난 [[매슈 페리]]가 이끈 미국 해군 함대인 [[흑선]]의 등장 이후 미국과 불평등 조약인 [[가나가와 조약]]을 맺었고<ref>한상일, 《아시아 연대와 일본제국주의》, 오름, 2002년, ISBN 8977781485, 37쪽</ref>, 이후 [[메이지 유신]]으로 [[도쿠가와 막부]]가 붕괴된 이후 스스로 제국주의를 표방하고 [[일본 제국]]을 수립하였다.
 
[[한국의 역사]]에서 19세기는 [[조선]]의 [[조선 순조|순조]]부터 [[조선대한제국]]의 [[대한제국 고종|고종]]에 이르는 시기이다. [[조선 정조|정조]]의 사망으로 [[1800년]] 순조가 11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조선 영조|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 (조선 영조)|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정순황후는 [[노론]] 벽파에 속하였으며,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당시 [[남인]] 사이에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전파되고 있던 [[천주교]]를 박해하여 [[신유사옥]]이 일어났다.<ref>한정주, 《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다산초당, ISBN 899255561X, 83쪽</ref> 순조는 1804년부터 친정을 하였으며 정순왕후의 세력을 견제하고자 노론 시파인 김조순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였고, 이후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이 [[비변사]]를 장악하여 [[세도정치]]가 이루어졌다. 이후 [[조선 헌종|헌종]], [[조선 철종|철종]] 시기에 이르기까지 세도정치가 계속되었다.<ref>한영우, 《다시찾는 우리역사》, 경세원, ISBN 89-8341-057-4, 439-441 쪽</ref> 19세기 조선은 지역 차별과 삼정의 문란 등으로 인해 각종 민란이 끊이지 않았다. 1811년 일어난 [[홍경래의 난]]은 서북 지역에 대한 차별이 주요 원인이었고<ref>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 홍경래의 난</ref>, 이 외에도 가혹한 수탈을 견디지 못한 농민들이 산으로 숨어 화전민이 되거나, 심할 경우 명화적이나 수적이 되는 일이 많았다.<ref>한영우, 《다시찾는 우리역사》, 경세원, ISBN 89-8341-057-4, 4441-442 쪽</ref> [[조선 후기의 농민 반란|조선 후기 민란]]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으며<ref>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 조선 후기의 농민 반란</ref>, 특히 1862년 삼남지방의 [[임술농민항쟁]]은 매우 큰 사회적 충격을 가져왔다.<ref>한국사특강편찬위원회, 한국사특강, 서울대학교출판부, ISBN 89-7096-115-1, 230쪽</ref> [[1863년]] 철종이 후사없이 사망하자 [[조선 인조|인조]]의 후손인 고종이 즉위하였다.<ref>정교(鄭喬) 저, 조광(趙珖) 편, 《대한계년사 1》(소명출판, 2004년) 47~48쪽.</ref> 즉위 초기에는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하였으나, 일본의 [[대정봉환]]에 따른 국교 수립 요청과 [[운요호 사건]] 이후 [[강화도 조약]] 채결을 즈음하여 친정을 하였다.<ref>한국사특강편찬위원회, 한국사특강, 서울대학교출판부, ISBN 89-7096-115-1, 231쪽</ref> 1897년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로 즉위하여 연호를 광무라 하였다.<ref>고종실록 광무 1년 10월 13일</ref>
 
한편, 19세기는 과학의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발견이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찰스 다윈]]은 [[1859년]] 《종의 기원》을 발표하여 생물 진화의 사실을 제시하고, 진화의 원인으로 [[자연 선택]]을 제시하였다.<ref> Wallace, A; Darwin, C (1858). [http://darwin-online.org.uk/content/frameset?itemID=F350&viewtype=text&pageseq=1 "On the Tendency of Species to form Varieties, and on the Perpetuation of Varieties and Species by Natural Means of Selection"]. Journal of the Proceedings of the Linnean Society of London. Zoology 3: 53–62. doi:10.1098/rsnr.2006.0171. Retrieved 2007-05-13</ref> [[루이 파스퇴르]]는 [[1861년]] 《자연발생설 비판》을 출간하여 발효와 부패는 미생물에 의한 것임을 증명하였고, [[백신]]을 통한 전염병 예방법을 확립하였다.<ref>David V. Cohn, Ph.D.,E, [http://pyramid.spd.louisville.edu/~eri/fos/interest1.html Louis Pasteur]</ref> 생물학의 발전에 힘입어 [[서양]]의 [[의학]]역시 발전하여 사망율이 감소함에 따라 [[인구]]가 증가하였다. [[유럽]]의 인구는 19세기 동안 2억여 명에서 4억여 명으로 두 배가 되었다.<ref>[http://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387301/modernization/12022/Population-change Modernization – Population Change]. Encyclopædia Britannica.</ref> 물리학 분야에서는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맥스웰 방정식]]을 수립하여 [[전기]]와 [[자기]]가 동일한 현상임을 입증하고 [[전자기 복사]]를 예견하였다.<ref>타케우치 아츠시, 김현영 역, 《고교수학으로 배우는 맥스웰의 방정식》, 도서출판 홍, ISBN 89-5517-125-0</ref> [[조사이어 윌러드 기브스]]는 [[열역학]]의 여러 법칙의 확립에 기여하였다. 그가 도입한 [[기브스 자유 에너지]] 개념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기초 과학 법칙으로 사용되고 있다.<ref>박병각 외, 《물리 화학의 원리》, 학문사, 1999년, ISBN 8946741341, 129-130 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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