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순종"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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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 = [[조선의 역대 국왕#대한제국|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br />[[대한제국의 황실 수장|대한제국의 2대 황실 수장]]
}}
'''순종'''(純宗, [[1874년]]([[대한제국 고종|고종]] 11년) [[음력 2월 8일]](양력 [[3월 25일]])~[[1926년]] 양력 [[4월 25일]])은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ref>[[조선 왕조]] 왕조의 제27대 [[왕]]으로 보기도 한다.</ref>이다. [[연호]]를 따 '''융희제'''(隆熙帝 : 재위 [[1907년]]~[[1910년]])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은 [[이씨|이(李)]], [[휘]]는 척(坧), [[본관]]은 [[전주이씨|전주(全州)]], [[자 (이름)|자]]는 군방(君邦), [[호 (이름)|호]]는 정헌(正軒), 정식 시호는 '''순종문온무녕돈인성경효황제'''(純宗文溫武寧敦仁誠敬孝皇帝)이다. [[조선대한제국 고종|고종]]과 [[명성황후]]의 아들이며, 고종의 장성한 자녀 중 유일한 적자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왕'''(李王)으로 불렸다.
 
[[대한제국 고종|고종]]의 유일한 적자이자 장자로 [[명성황후|명성황후 민씨]] 소생이며, 어려서부터 병약하였고 후사는 없다. 그의 아호 '''정헌'''(正軒)은 부황 고종이 그에게 내려준 아호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3575273</ref> 그는 [[한국]] 역사상 최후의 군주이기도 했다.
 
[[1907년]] [[7월 20일]]부터 [[1910년]] [[8월 22일]]까지 재위하는 동안 [[1907년]] [[7월 20일]]부터 [[1909년]] [[7월 12일]]까지 친정을 하였고 [[1909년]] [[7월 12일]] [[기유각서]] 사건으로 [[대한제국|대한제국 조선]] 주재 [[일본]] 통감 [[소네 아라스케]](曾禰荒助)에게 [[권력|실권]]이 박탈되어 [[1909년]] [[7월 12일]]부터 [[1910년]] [[5월 30일]]까지 [[소네 아라스케]]가 [[권력|실권]]을 잡았으며 [[1910년]] [[5월 30일]]부터 [[1910년]] [[8월 29일]] 퇴위할 때까지 역시 대한제국 조선 주재 일본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内正毅)가 [[권력|실권]]을 잡았다.
 
== 생애 ==
=== 왕세자, 황태자 시절 ===
[[파일:Gosoon.jpg|thumb|200px|left|[[대한제국 고종|고종]]과 황태자 시절의 순종]]
순종은 [[1874년]]에 [[대한제국 고종|고종]]과 [[명성황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성황후는 순종 이외에도 몇 명의 자식을 더 낳았으나 장성한 것은 순종이 유일하다. [[1875년]]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1895년]] 모후 [[명성황후]]가 [[경복궁]]에서 시해되는 소식을 접하였다. 이때 그는 부황 [[대한제국 고종|고종]]과 함께 일본 낭인과 조선인한국인 협력자들에 의해 [[창덕궁]] 또는 [[덕수궁]]에 감금당해 있었다. [[1895년]] [[홍범 14조]] 반포와 동시에 왕태자로 올랐고, 1897년에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 [[황태자]]로 격상되었다.
 
그 뒤, 1898년 [[김홍륙]](金鴻陸)이 [[대한제국 고종|고종]]과 황태자에게 해를 가할 목적으로 [[대한제국 고종|고종]]과 황태자였던 순종이 즐기던 [[커피]]에 다량의 [[아편]]을 넣었는데, [[대한제국 고종|고종]]은 맛이 이상함을 알고 곧바로 뱉었으나, 순종은 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다량을 복용하여 치아가 모두 망실되고 며칠간 혈변을 누는 등 심한 몸살을 앓았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김홍륙의 유일한 세력기반이 고종이었던 사실과, 김홍륙이 유배 당시 지속적으로 고종의 안위를 물었던 사실을 고려하면 실제로 김홍륙이 고종과 황태자에게 해를 가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그 정적들인 친일파가 김홍륙에게 누명을 씌워 제거하기 위해 자작극을 벌인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이 무렵 [[일본]]이 [[러일 전쟁]]을 통해 [[한반도]]에서 다른 식민지 열강 세력을 몰아내고 [[대한제국]]의 이른바 후견국을 자처하면서 [[한일 합방]]의 발판을 공고히 하였다. 여기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안중근]]에 의해 [[하얼빈]]에서 사살되었다.
 
한편 같은 해인 [[1909년]] [[기유각서]] 사건으로 인하여 대한제국 황제 순종 임금의 실권은 제2대 조선대한제국 통감 [[소네 아라스케]]에게 박탈되고 순종 임금은 이듬해인 [[1910년]]까지 허수아비 임금의 신세가 되었다. 뒤이어서 제3대 조선대한제국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대한제국의 실권을 쥐고 [[1910년]] [[한일합방|경술한일합방조약]]으로 대한제국 조선대한제국은 왕조는사실상 멸망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 퇴위와 생애 후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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