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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mm 주포 탑재형 49대로 편성된 1경전차대대는 [[폴란드 육군]]의 전략 예비 일부로서 [[프루쉬군]](Prusy Army)에 배속되어 싸웠다. [[1939년]] [[9월 4일]] 전투에 투입되어 다양한 역할로 구분되어 싸웠는데, 대부분은 후퇴를 엄호하기 위한 기동 예비 역할이었다. 여러 전투에 참가했지만, 유명한 전투로는 [[프세드보즈 전투]](Battle of Przedborz), [[술레야브 전투]](Battle of Sulejow), [[이노부츠 전투]](Battle of Inowłodz), [[오드시붜 전투]](Battle of Odrzywoł)와 [[드제비차 전투]](Battle of Drzewica) 등이었다. [[9월 8일]], 폴란드군 주력부대가 독일군의 진격을 그럭저럭 저지했지만, 다음 날 주력부대로부터 분산되어 후방으로 철수해야 했다. 대대 일부는 [[궈바초프 전투]](Battle of Głowaczow)에서 괴멸되었고, 그 사이 [[9월 13일]]에 잔여 전차들이 [[비스툴라 강]] 다른 쪽을 통해 돌파하는데 성공하여 [[루블린 군]]에 합류하여 [[스테판 로베키]](Stefan Rowecki) 대령의 [[바르샤바 기갑자동차화여단]]에 배속되었다. 여단의 일부로서, 대대는 [[유제푸프 전투]](Battle of Jozefow)에 참가했으며, [[르뵈프]]와 [[루마니아 교두보]]로 탈출을 시도하는 폴란드군의 선봉대의 일부를 이루었다. [[9월 21일]] [[토마슈프 루벨스키 전투]](Battle of Tomaszow Lubelski) 이후, 잔여 전차들은 전차병이 파괴했고 부대는 독일군에 항복했다.[[Image:7TP-3.jpg|thumb|left]]
 
37mm 주포 탑재형 49대로 편성된 2경전차대대는 [[루치 군]]의 [[표트르쿠프 트리뷰날스키]] [[작전 그룹]](Operational Group)<ref>이 개념은 1939년 당시 폴란드군의 부대 단위로 전술 사단보다 상급 부대 개념이다. 규모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략 군단급이었다. [http://en.wikipedia.org/wiki/Operational_Group 영어 위키피디어에] 자세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간략하게 나와 있다.</ref> 9월 4일, [[붸하투프]] [[프루드카 강]](Prudka) 근처에서 전투에 투입되었다. 다음 날, 2경전차대대는 표트르쿠프에서 폴란드군의 반격을 이끌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고 부대는 큰 손실을 입었다. 대대는 재집결하여 [[바르샤바]]로 철수했고, 다시 [[브레스트 (벨라루스)]브레스트]]로 철수하여 그곳에서 [[폴란드 60 보병사단]]이 동원되는 것을 은폐하였다. 9월 15일, 이틀 간 길게 계속된 [[붜도바 전투]]에 참가했으나,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막심한 피해를 입고 남서쪽으로 철수했다. 살아남은 전차들은 기름 부족때문에 전차병들이 파괴했으며, [[소비에트 연방]]이 독일과 연합하여 폴란드를 침공한 9월 17일에 전차병들과 부대 지휘부는 [[루마니아]] 국경을 넘었다.
 
바르샤바에서 남은 전차들은 바르샤바 방어 사령부 예하에 1경전차중대 및 2경전차중대로 편성되었다. 1중대는 이전에는 훈련용으로 사용되던 2포탑형 11대로 편성되었다. [[바르샤바 공방전 (1939년)|바르샤바 공방전]] 시작 단계에서 1중대는 바르샤바 교외 [[Ok?cie]]에서 격렬한 전투에 참가했다. 그곳에는 주요 공항이 있었다. 대전차 무장이 부족했기 때문에 1중대 소속 전차들은 막심한 피해를 입었고, [[9월 12일]]에 후방으로 물러나 잔여 병력 및 전차들은 2중대에 합류했다.
 
2중대는 37mm 탑재형 11대 뿐만 아니라 숫자 미상의 기타 기갑 차량을 운용했다. 2중대는 독일군 보병 및 기타 기갑 차량에 맞서서 [[볼라]](Wola) 지구에서 성공적인 방어전을 치뤘으며, [[바브쥐세프]](Wawrzyszew]) 사이에서 전술적 반격 작전에도 투입되었다. 그곳에서 중대는 공격을 준비하는 독일군을 방해하려고 했다. [[9월 15일]], 중대는 [[브주라 전투]](Battle of Bzura) 후 바르샤바 북쪽 [[캄피노 숲]]을 지나 후퇴하고 있던 [[포즈난 군]]과 연결할 목적으로 준비하고 있던 공격 작전의 최선봉 부대를 편성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루프트바페]]의 공중 폭격으로 병력과 전차에 큰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공격은 작은 성공을 거두는 것으로 끝났다. 남은 7TP 전차들은 [[9월 27일]]에 바르샤바가 항복할때까지 전선 여기저기에서 전투에서 싸웠으며, 그 날 전차병들은 자신들의 전차를 자기 손으로 파괴했다.
 
7TP에 탑재된 [[보포스 37mm 대전차포|보포스 wz.37]]는 [[4호 전차]]를 포함하여 당시의 모든 독일군 전차의 장갑을 충분히 관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전 경험이 입증했다. 다른 한편으로 7TP는 장갑이 너무 얇았으며 특히 항공기 폭격에 취약한 면을 드러냈다. 전체적으로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은 20대가 독일군에 노획되었고, 1대가 소련군에 노획되었다. 추가로 20대가 [[루마니아]]와 [[헝가리]]로 도망쳤지만 40여대는 엔진 문제와 연료 부족으로 버려져야 했다. 오늘날까지 온전한 상태로 남은 7TP는 없지만, 바르샤바 [[폴란드 육군 박물관]]에서 이 전차의 복원을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