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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권강화의 시도 ===
1553년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거두고 친정(親政)을 하게 된 명종은 문정왕후와 윤원형을 견제하고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이량 (조선)|이량]](李樑)을 이조판서, 그 아들 [[이정빈 (1539년)|이정빈]](李廷賓)을 [[이조 (행정기관)|이조]]전랑으로 기용했다. 그러나 [[이량 (조선)|이량]]등은 왕의 신임을 믿고 파벌을 형성하여 횡령을 일삼았으며 사림 출신의 관료들을 외직으로 추방했다. 이에 사림들이 반발하자 이량은 사화(士禍)를 꾀했으나 [[심의겸]](沈義謙)에게 탄핵당하여 1563년 숙청되었다.
 
결국 1565년 문정왕후가 죽기까지 20년 동안 명종은 자신의 세력기반을 지니지 못한 채 문정왕후와 윤원형의 전횡 속에서 왕위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문정왕후가 죽은 뒤 윤원형과 [[보우 (조선)|보우]](普雨)를 내쫓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여 정치를 하려고 노력했으나, 1567년 33세의 나이로 죽었다. 인순왕후와의 사이에 낳은 순회세자(順懷世子)가 일찍 죽어, 왕위는 중종의 9번째 아들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셋째 아들 [[조선 선조|선조]]가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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