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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부통령|부통령]] 후보로도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4·19 혁명]] 이후 [[장면]] 정권과 [[박정희]] 정권 기간 중에는 야당 지도자로 활동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1998011570382 [박정희의 생애&#93;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83) - 조선닷컴 인물<!-- 봇이 붙인 제목 -->]</ref>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을 재건하여 총재가 되었고,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1964년]] 이후 [[박정희]] 정권의 한일회담에 반대하여 [[윤보선]], [[장준하]], [[함석헌]] 등과 대일굴욕외교반대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위원장을 역임하고, [[1969년]] [[신민당 (1967년)|신민당]] 고문이 되었다.
 
해방 정국에서 [[조선공산당]]과 [[남로당]] 등 좌파 정당과 좌파 정치운동에 대한 구속, 탄압을 가하였으나, [[여운형]], [[이만규]], [[조봉암]] 등과는 인간적인 친분관계를 유지하였다. [[진보당 사건]]으로 [[조봉암]] 등이 이적행위자와 공산주의자로 몰리자 [[조봉암]]의 석방, 구명운동을 폈고, 법정에서 [[조봉암]]을 변호하기도 했다. 학자 [[장현광|여헌 장현광]](張顯光)의 후손으로 [[이조 (행정기관)|이조]][[판서]] [[장석용]]의 손자이자 [[경기도]][[관찰사]]를 지낸 [[장승원]](張承遠)과 정부인 풍양조씨(豊壤趙氏)의 셋째 아들이었다. 자(字)는 치우(致雨), 어릴 적의 이름은 장삼욱(張三旭), 영문 이니셜은 TS. [[호 (이름)|호]]는 창랑(滄浪). 본관은 [[인동 장씨|인동]](仁同), [[경상도]] [[인동군]] 북삼면 오태동(현 [[경상북도]] [[구미시]] 임오동) 출신이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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