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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김만채]] 등은 그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유배되었고, 시신은 가까운 친지들에 의해 장사하고 [[경기도]] [[광주군 (경기도)|광주군]] 퇴촌면 무수리에 안장되었다. 묘(墓)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무수리 산 4-3번지에 있다.
 
사후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하면서 [[우승지]]인 [[김만채]]가 아버지의 억울함을 하소연하여 복권되고 [[증직|증]] [[이조 (행정기관)|이조]][[판서]](吏曺判書)가 [[추증]]되었다. 그러나 경종이 즉위한 뒤 [[소론]]이 집권하면서 다시 추탈되었다. [[1720년]](경종 즉위년) 다시 손자 [[김진상]](金鎭商)이 조부의 억울함을 상소했다가 그해 가을 전라 감사(全羅監司) [[한지]](韓祉) 등이 반론을 제기하는 등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으나, 곧 묻혀졌다. 이후 [[조선 영조|영조]] 때인 [[1760년]] 최종 복권되었다.
 
== 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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