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군주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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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군주국 표}}
{{오스트리아의 역사}}
'''합스부르크 군주국'''(Habsburgermonarchie) 또는 '''합스부르크 제국'''(Habsburgerreich)은 [[오스트리아 대공]] [[카를 5세]]가 [[페르디난트 1세 (신성 로마 제국)|페르디난트 1세]]에게 [[스페인]]을 제외한 나머지 영지들을 넘겨준 후부터 [[합스부르크 왕가|오스트리아계 합스부르크]]가 지배하는 영지를 모두 이르는 말로서, 지금의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체코]]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1806년]]합스부르크 [[프랑스의군주국은 나폴레옹공식 1세]]에명칭은 의해아니지만, [[신성당시에도 로마종종 제국]]해체되면서, [[오스트리아 제국]]에 속하게이름으로 되었다불렸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장은 대부분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겸했으나,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영토는 신성 로마 제국 바깥에도 걸쳐 있었다. 한편 신성 로마 제국 내의 군주국들은 다른 가문에 의해 다스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역사가들은 합스부르크 군주국과 신성 로마 제국을 별개의 체제로 간주한다.
 
[[1806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에 의해,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면서, [[오스트리아 제국]]에 속하게 되었다.
 
== 기원 ==
 
합스부르크 가는 현재의 [[스위스]]에 위치한 [[합스부르크 성]]을 지배하는 가문이었다. 1279년 [[루돌프 1세]]가 [[오스트리아]] 영지를 획득한 이후,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크 가의 지배령이 되었다.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는 결혼과 입양을 통해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가문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의 동생 [[페르디난트 1세 (신성 로마 제국)|오스트리아 대공 페르디난트]]는 헝가리-보헤미아의 왕 [[러요시 2세]]가 죽은 후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왕이 되었다. 헝가리는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지가 되었다.
 
== 특징 ==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러 영지가 단일 국가로 합쳐진 적은 없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각각의 지방은 각 지역의 독자적 관습에 따라 다스렸다. 17세기 중반까지는 가문의 서로 다른 일원이 각 나라를 따로 다스리는 경우도 많았다. [[마리아 테레지아]]와 그의 아들 [[요제프 2세]]는 18세기 중후반에 걸쳐 이들 영지를 중앙집권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요제프의 과감한 개혁은 반란에 부딪혀 무위로 돌아갔다.
 
1848년 오스트리아 제국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오스트리아 제국은 점차 수도 빈을 중심으로 집권화된 관료제 국가로 변모하게 되었다. 제국의 일부였던 [[헝가리 왕국]]은 여러 지방으로 해체되어 제국으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독립전쟁]] 및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의 패배 후 이 정책은 폐기되었고, 헝가리와의 [[아우스글라이히|대타협]]이 이루어졌다. 이로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각각 자치권을 갖고 외교 및 군사 정책에서만 협력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탄생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제1차 세계 대전|1차대전]] 패배 이후 불거진 민족 간 갈등으로 붕괴되었다. 이후 제국의 일부는 새로 생겨난 오스트리아 공화국 및 헝가리 공화국으로 이어졌고, 상당한 영토가 이탈리아, 루마니아, 폴란드, 세르비아, 체코 등의 주변국으로 흡수되었다.
 
== 합스부르크 군주국 외의 합스부르크 영토 ==
 
합스부르크 군주국 외에도 합스부르크 왕가의 일원들은 다양한 영토를 다스렸으나, 이들 영토는 합스부르크 군주국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스페인계 합스부르크 왕가는 1516년부터 1700년까지 [[스페인]]을 다스렸다. 또다른 방계 가문은 1765년부터 1801년까지 [[토스카나 대공국]]을 다스렸고, 일시적으로 망명하여 잘츠부르크 및 [[뷔르츠부르크]]를 다스리다가 다시 복귀하여 1814년부터 1859년까지 토스카나 대공으로 재위했다.
 
== 영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