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량 (남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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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조 통일 직전인 [[587년]] 수나라 [[수 문제|문제]]에 의해 후량은 없어졌다. 남조 진나라의 멸망 후 [[589년]] 진나라의 동양주자사(東揚州刺史) 소엄(蕭厳)과 오주자사(呉州刺史) 소헌(蕭瓛)이 주인을 자처하며 수나라에 반항했는데, 소엄은 소찰의 5남이었고, 소헌은 명제(明帝) 소규의 3남이었다.
또한 수나라 말기 파릉(巴陵)에서 거병하여 양왕을 칭했던 소선(蕭銑)은 소엄의 손자였다. 거기에 당나라의 상서좌복야(尚書左僕射)까지 오른 소우(蕭瑀)는
== 역대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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