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조 쓰네토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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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무사
'''호조 쓰네토키'''('''{{ja-y|北条経時|ほうじょう つねとき}}''')는, 일본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전기의 인물이다. 호조 씨(北条氏) 도쿠소케(得宗家) 일문으로서 막부의 4대 [[싯켄]](執権, 재직, [[닌지]](仁治) 3년([[1242년]]) 6월 15일(7월 14일) - 간겐(寛元) 4년([[1246년]]) 3월 23일(4월 10日))이 되었다.
| 이름 = 호조 쓰네토키
| 시대 = [[가마쿠라 시대]] 중기
| 태어난 해 = [[겐닌 (1224년)|겐닌]](元仁) 원년(1224년)
| 사망한 해 = 간겐(寛元) 4년(1246년) 윤4월 1일(5월 17일)
|개명 = 호쇼 고젠(藻上御前, 호쇼마루藻上丸), 쓰네토키(経時), 안라쿠(安楽)
|별명 = 다로(太郎), 야시로(弥四郎), 사콘노다이후(左近大夫)
|계명 = 렌게지 안라쿠(蓮華寺安楽)
|묘소 = 가마쿠라 시(鎌倉市) 사이모쿠사(材木座)의 천조산(天照山) 렌게인 고묘지(蓮華院光明寺)
|관위 = 사콘노에노쇼칸(左近衛将監), 정5위하, 무사시노카미(武蔵守)
|막부 = 가마쿠라 막부 와카사 슈고(若狭守護)・효조슈(評定衆)・싯켄(執権)
|주군 = 후지와라노 요리쓰네(藤原頼経) → 요리쓰구(頼嗣)
|씨족 = 호조 씨 도쿠소케(北条氏得宗家)
|부모 = 아버지: 호조 도키우지(北条時氏), 어머니: 마쓰시타노젠니(松下禅尼)
|형제 = 쓰네토키(経時), 도키요리(時頼)(※), 도키사다(時定), 히레다히메(檜皮姫), 아시카가 야스우지(足利泰氏)의 아내, 도키후사류(時房流) 호조 도키사다(北条時定)의 아내
|아내 = 정실 : 우쓰노미야 야스쓰나(宇都宮泰綱)의 딸<ref>생전에 쓰네토키의 아버지 도키우지는 [[가로쿠]](嘉禄) 2년([[1226년]])에 야스토키의 뜻에 따라 우쓰노미야 야스쓰나의 딸과 혼약을 맺었다.</ref>
|자녀 = 류세이(隆政), 라이조(頼助)</br>(※도쿠소케를 이어받은 것은 친동생인 도키요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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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 쓰네토키'''('''{{ja-y|北条経時|ほうじょう つねとき}}''')는, 일본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전기의 인물이다. 호조 씨(北条氏) 도쿠소케(得宗家) 일문으로서 막부의 4대 [[싯켄]](執権, 재직, [[닌지]](仁治) 3년([[1242년]]) 6월 15일(7월 14일) - 간겐(寛元) 4년([[1246년]]) 3월 23일(4월 10日10일))이 되었다.
제3대 싯켄 [[호조 야스토키]](北条泰時)의 적남(嫡男)이었던 호조 도키우지(北条時氏)의 장남이다. 어머니는 [[고케닌]] [[아다치 가게모리]](安達景盛)의 딸로 현모(賢母)로 이름높았던 마쓰시타노젠니(松下禪尼)이며, 친형제로는 훗날 5대 싯켄이 되는 [[호조 도키요리]](北条時頼)나 [[호조 도키사다]](北条時定)가 있다.
 
제3대 싯켄 [[호조 야스토키]](北条泰時)의 적남(嫡男)이었던 호조 도키우지(北条時氏)의 장남이다. 어머니는 [[고케닌]] [[아다치 가게모리]](安達景盛)의 딸로 현모(賢母)로 이름높았던 마쓰시타노젠니(松下禪尼)이며, 친형제로는 훗날 5대 싯켄이 되는 [[호조 도키요리]](北条時頼)나 [[호조 도키사다]](北条時定)가 있다.
 
== 생애 ==
=== 싯켄직 상속 ===
아버지 도키우지가 간기(寛喜) 2년([[1230년]]) 6월 18일에 요절하고 숙부 도키자네(時実)도 암살되는 바람에, 적손(嫡孫)으로서 쓰네토키가 야스토키의 후사로 지목되었다. 생전에 도키우지는 가로쿠(嘉禄) 2년([[1226년]])에 야스토키의 뜻에 따라 우쓰노미야 야스쓰나(宇都宮泰綱)의 딸과 혼약을 맺었는데, 아버지가 죽은 뒤 쓰네토키는 아버지가 생전 맡고 있던 와카사 슈고(若狭守護)를 이어받아 맡게 되었다(《와카사 국 슈고직 차제》(若狭国守護職次第)).<ref>다만 그 기간이 명확하지 않은데, 구마가이 다카유키(熊谷隆之)는 도키우지 사망 직후부터 이듬해까지, 7세의 소년이 실무를 맡은 것은 아니고 실은 할아버지인 야스토키가 후견이 되었으며 도키우지의 후사로서의 입장을 분명히 하기위해 명목상의 슈고직을 주었다고 하였다.(高橋慎一朗 著『人物叢書‐北条時頼』吉川弘文館、2013年、p.14~15)</ref>
 
[[덴푸쿠]](天福) 2년([[1234년]]) 3월 5일에 11세로 원복을 행했는데, 4대 [[쇼군]](将軍)이었던 [[후지와라노 요리쓰네]](藤原頼経)의 고쇼(御所)에서 행해졌고 요리쓰네가 관을 씌워주었으며 상투는 호조 도키후사(北条時房)가 틀어올려 주고, 쇼군 요리쓰네의 헨기(偏諱)를 받아 '''야시로 쓰네토키'''('''弥四郎経時''')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다. 야시로라는 이름은 초대 싯켄이었던 [[호조 도키마사]](北条時政)나 [[호조 요시토키]](北条義時)의 가명이기도 했던 「시로(四郎)」를 의식한 것으로 도쿠소케 적류(嫡流)의 정당성을 보이려는 야스토키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ref>高橋慎一朗 著『人物叢書‐北条時頼』吉川弘文館、2013年、p.18</ref> 8월 1일부터 막부의 고사무라이도코로노벳토(小侍所別当)로 임명되었다(~[[가테이]](嘉禎) 2년([[1236년]]) 12월 26일). 가테이 3년([[1237년]]) 2월 28일에 사콘노에노쇼칸(左近衛将監)이 되고, 이듬해에 종5위하의 관위를 받았다(《무가연대기》(武家年代記)).
 
[[닌지]](仁治) 2년([[1241년]]) 6월 28일, 할아버지 야스토키에 의해 쓰네토키는 효조슈(評定衆)의 일원에 들게 된다. 8월 12일에는 관위도 종5위상이 되었다(《무가연대기》). 이 해에 건강이 악화된 야스토키는 쓰네토키를 후사로 확립하기 위해 급하게 움직였는데, 11월에 쓰네토키를 불러 정무에 대한 훈계를 하는가 하면 쓰네토키에 대해 태평을 존중하려면 문치(文治)에 힘쓸 것이며, "특히 사네토키(実時)와는 어떤 일이든 상담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고유한다. 두 사람은 같은 나이로서 야스토키를 숙부인 도키후사가 도왔던 것처럼 쓰네토키도 사네토키와 함께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듬해 6월 15일에 야스토키는 사망, 쓰네토키는 4대 싯켄이 되었다. 그러나 겨우 19세에 불과한 쓰네토키의 싯켄 계승에 대해 불만을 품은 적대 세력들이 정권 내에서 존재했고, 렌쇼(連署)도 차츰 설치되지임명되지 않게 되었다.
 
=== 쓰네토키의 싯켄 정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