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서 (1383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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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후 ===
사후 [[계유정난]] 및 [[단종복위운동]]으로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은 끝내 죽게되고, 그와 죽은 인파는 너무 커서 함길도 도절제사 [[이징옥]]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수양대군이 함길도는 아직 이징옥이 있어 위협을 느끼자 지난날 김종서를 탄핵하던 [[박호문]]을 함길도로 보낸다. 신임 함길도 도절제사가 되는것이다. 그러나도성에선 해임되는병조참판으로 이징옥은제수한다며 믿지못했다이징옥을 귀경시킨다. 자신이무슨 아버지처럼일이 모시는있었는지 물어보자, 박호문은 왠일인지 수양대군 손에 김종서가 도성에죽고, 큰일이황보인이 있기효수를 전에당했다는 부르지소식을 않겠다고듣고 했기에순순히 소수의박호문에게 군사들을인수인계를 이끌고한다. 이징옥이 자신이 한성에 가면 [[수양대군]]이 자신을 죽일 것을 눈치채자, 박호문에게60리 쯤 가다가 군사를 물어보러간다돌린다. 박호문에게와서 수양이6진개척 난을당시 일으켜상관인 죄상을김종서를 모함한 박호문을 죽이고, 어린왕을수양을 겁박한다는치려고 말을자신의 듣자진으로 간다. 박호문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것을 알자, 이에아들과 반발하여함께 박호문을성문 옥상으로 피신한다. 결국 이징옥에게 들켜 화살에 맞아 죽고 그의 아들은 포박한 뒤, 죽여버린다. 이들을 죽이고 여진족의나서 군사를 일으켜 추장들과여진족과 손을잡고 스스로를 대금황제로 칭하고 난을 일으키지만 종성판관 [[정종]]의 밀사로 난은 실패하였다. 이 난으로 훗날 [[이시애의 난]]이 일으키게 되는 사건이 되게 이어졌다. 김종서가 [[함길도]]와 친분이 두텁기 때문이다. 그의 신원은 그가 죽은 뒤 293년만에 [[영조]]때 복구되고 충익이라는 시호가 내려지고 지금까지 단종조의 충의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기억된다.
 
== 6진 개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