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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 성]] 펑화현 출신으로 [[1906년]] [[바오딩 군관학교]]에 입학하고 다음해 [[일본 육군사관학교]]로 유학갔다. 일본 유학시기에 [[중국동맹회]]에 가입하고 [[1911년]] [[신해혁명]]에 참가하였다. [[쑨원]]의 신임을 받아 [[1923년]] [[제1차 국공합작]]때는 [[소련]]으로 군사시찰을 갔으며, 귀국 후 [[황푸군관학교]] 교장에 취임했다. [[1926년]] [[국민혁명군]] 총사령관에 취임하여 [[북벌 (국민당)|북벌]]을 시작하였으며 [[1927년]] 4월에는 [[4.12 사건|상하이 쿠테타]]를 일으켜 [[중국 공산당|공산당]]을 축출하고 [[1928년]]에 [[베이징]]을 점령하여 북벌 완수를 선언했다.
 
이후 [[난징 시|난징]]에 수도를 정하고 [[국민정부]]를 선포, 국민정부 주석과 육군, 해군, 공군 총사령이 되어 정당과 정부의 지배권을 확립했다. [[1930년]]부터 공산당 토벌에 나섰으며, 이를 항일전쟁보다 우선시하였다. 그러나 [[1936년]] 공산당 토벌작전을 독려하기위해 [[시안]]에 갔다가 그의 부하인 [[장쉐량]]과 그의 군대에 의해 감금당한 [[시안 사건]]을 계기로 [[1937년]] [[제2차 국공합작]]을 결성하여 공산당과 함께 항일전쟁([[중일전쟁]])에 나섰다. [[1945년]] [[중일전쟁]] 끝난 이후 [[1946년]]부터 [[제2차 국공내전|다시 공산당과 내전]]을 벌였으며, [[1949년]] [[중국 공산당]]에 밀려 [[타이완]]으로 이전하였다. 중화민국의 총통과 국민당 총재로 장기 집권하다가 [[1975년]] 사망했다.
 
[[1948년]] [[5월 20일]]부터 [[1949년]] [[1월 21일]]까지는 [[중화민국]]의 초대 [[중화민국의 총통|총통]]과 [[중국 대륙]]의 [[국가원수]]를 지냈고 [[1950년]] [[3월 1일]]부터 [[1975년]] [[4월 5일]]까지 초대~5대([[리쭝런]]의 직무대행기간 및 사망으로 인한 [[옌자간]]의 직무승계기간 제외) [[중화민국]] [[중화민국의 총통|총통]]을 역임했다. [[1930년]]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적극 후원하기도 했다. 중화민국 내에서는 [[쑨원]] 다음으로 '제2의 국부'(國父)로 불린다.
장제스는 6세부터 16세 소년기까지 고향의 여러 사숙(私塾)을 옮겨 다니면서 여러 스승에게서 전통 [[한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8세 때 이미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을 읽기 시작하였으며, 13세에 《상서(尙書)》와 당시(唐時)를 배웠고, 14세에 《역경(易經)》을 완독하였으며, 15세에 《좌전(左傳)》을 읽고 책론(策論)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16세에는 모사성(毛思誠) 문하에서 《좌전》을 다시 배우고 《통감(通鑑》을 훑어 보았다고 한다. 이렇게 장제스는 소년기에 이미 중국의 전통 학문과 사상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쌓았는데, 이것이 훗날 그의 [[민족주의]]적 성향과 중국의 전통적 가치를 중히 여기는 데 바탕이 되었다 한다.<ref name="a"/>
 
장제스는 14세가 되던 해였던 [[1901년]], 당시 관행대로 어머니가 정해 준 5년 연상인 인근 처녀 [[:zh:毛福梅|마오 푸메이마오푸메이]](毛福梅)와 결혼하였다. 이 첫째 부인 모복매가 훗날 장제스의 장남 [[장징궈]]와 딸 [[장젠화]]의 친어머니이다. 그러나 [[1913년]] 그는 [[:zh:毛福梅|마오 푸메이마오푸메이]]를 버리고 [[야오예청]](姚誠) 등 내연녀를 둔다.<ref name="a"/> [[1921년]]에는 [[:zh:毛福梅|마오푸메이]](毛福梅)와 법적 이혼하고 19년 연하의 [[:zh:陳潔如|천제루]](陳潔如)와 2번째 결혼한다.
 
장제스가 신식교육을 받기 시작한 것은 17세 부터다. [[1904년]] [[펑화 현]]의 [[봉록학당]]으로 진학하여 [[영어]]와 [[산술]],이화학 과목 등을 배웠고, 다음해 영파(寧波)의 전금공학(箭金公學)으로 전학하였는데, 거기서 박학하고 혁신적 사상을 가진 고청렴(高淸廉)이라는 스승을 만난다. 그는 거기서 [[쑨원]]의 혁명운동과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 대하여 듣고 [[쑨원]]을 존경하고 혁명에 투신할 뜻을 품게 되었다. 그가 일본에 가서 군사학을 배울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이때 비롯되었다 한다.<ref nam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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