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철 카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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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은 과학에 기초한 기술이 초래한 환경오염의 가공할 결과를 대중에게 처음으로 강렬히 인식시킨 책이다. 《침묵의 봄》의 1장("A Fable for Tomorrow")은 자연의 조화가 절묘한 아름다운 마을이 마치 저주의 마술에 걸린 듯 점차로 생명을 잃어가다가 봄의 소리, 새들의 소리가 사라진 죽음의 공간으로 바뀌는 짤막한 우화로 시작된다. 이어 2장에서 17장까지 디디티(DDT)와 같은 살충제와 농약이 새, 물고기, 야생동물, 인간에게 미치는 파괴적 결과를 4년간의 직접조사를 바탕으로 고발한 것이 책의 내용이다. 레이첼 카슨이 <뉴요커>지에 연재했던 내용을 한데 모아 이 책을 펴냈을 때 농약 제조업체 등의 비난과 모략은 극에 달했지만, 결국 이 책이 촉발한 환경오염 논쟁은 미국에서 1969년 국가환경정책법을 제정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전 세계적인 환경운동의 확산으로 마침내 1992년 리우회담까지 이어지는 성과를 낳았다.
 
== 유산 ==
===논문집과 사후 간행물===
 
카슨은 자신의 원고와 논문을 바이네케의 희귀 문서 및 도서 보관 도서관의 첨단 시설을 활용하기 위해서 예일대학교에 남겼다. 그녀의 오랜 대리인이자 문헌 상속관리인이었던 마리 로델은 거의 2년을 카슨의 논문, 편지등을 정리하는데 보냈고 또 편지의 발신인들에게 그들의 편지를 보내서 그들이 동의하는 것들만 서고에 보관되도록 했다. <ref>{{harvnb|Lear|1997|pp=467–8, 477, 482–3}} See also the Beinecke [http://hdl.handle.net/10079/fa/beinecke.carson finding aid for the Rachel Carson Papers].</ref>
 
1965년에 로델은 카슨이 책으로 내려고했던 에세이들의 출판을 계획했다. 에세이들은 찰스 프랫 2세의 사진들이 첨부된 것이고 다른 것들은 부모들로 하여금 "자연과의 교감의 영속적인 즐거움"을 아이들에게 경험하게 하라고 강추하는 내용이다. 자연과의 교감이란 "땅, 바다, 하늘 그리고 그안에 있는 놀라운 생명의 영향아래 자신을 두는 것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ref name="Murphy 25">Murphy, 25; quotations from ''A Sense of Wonder'', 95. The essay was originally published in 1956 in ''Woman's Home Companion''.</ref>
 
<<늘 레이철(Always Rachel)>>이라는 편지집에 더해서 1998년, 카슨의 미출간 원고들이 <<잃어버린 숲: 레이첼 카슨 글의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린다 리어가 편집해서 출판되었다. 모든 카슨의 책들은 아직도 출간되고 있다. <ref name="Murphy 25"/>
 
===풀뿌리 환경보호운동과 환경보호청===
카슨의 책들은 환경운동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침묵의 봄>>은 특히 1960년대에 태동하던 사회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환경 엔지니어이고 카슨 학자인, 패트리샤 하이네스에 의하면 "<<침묵의 봄>>은 세계의 힘의 균현을 바꾸었다. 그 이후에는 아무도 진보의 필요악으로 오염을 쉽게 그리고 무비판적으로 팔 수 없게 되었다." <ref>{{harvnb|Hynes|1989|p=3}}</ref> 카슨의 책과 그것이 촉발한 운동은 1960대에 부분적으로 깊은생태계 운동과 풀뿌리 환경운동의 전반적인 힘에 적어도 부분적으로 기여했다. 그것들은 또한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의 등장과 많은 페미니스트 과학자들에게도 영향 끼쳤다.
 
카슨의 환경운동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공헌은 미국에서 DDT의 사용금지운동을 한것이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금지 또는 제한적인 사용에 관한 노력들에 대해). 그러한 DDT의 환경에 대한 우려는 가장 일찍은 카슨의 대통력 과학자문기구에서의 증언때 처럼 정부에서 고려하기는 했지만, 1967년의 환경보호기금의 형성은 DDT 사용금지 운동의 첫번째 중요한 성취였다. 그 조직은 정부를 상대로 "오염되지 않은 환경에 대한 시민의 권리 확립"을 위해서 소송을 제기 했고, 반DDT 주장의 대부분은 카슨의 주장들이었다. 1972년까지는 환경보호기금과 다른 운동가 그룹들은 (비상시를 제외하고는) 미국에서 DDT의 점차적 사용금지를 확보했다. <ref>{{harvnb|Hynes|1989|pp=46–7}}</ref>
 
1970년에 닉슨 행정부에 의한 미국 환경보호청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의 설립은 카슨의 또 다른 우려가 빛을 보게된 것이다. 그때까지는 같은 기관(미국 농무부)가 농약의 규제와 농업에 관한 사항을 동시에 담당해야 했었다. 이 부처가 농업정책이상으로 야생과 다른 환경에 대한 영향에 관해서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카슨은 이것은 이해의 상충(conflict of interests)이라고 보았다. 설립후 15년이 지나서, 한 언론인은 환경보호청을 "<<침묵의 봄>>의 뻗어나온 그림자"라고 불렀다. 1972년의 "연방 살충제, 버섯 및 곰팡이 제거제, 설치류제거제에 관한 법"의 시행과 같은 이 부서의 초창기 업무들은 카슨의 저서들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ref>{{harvnb|Hynes|1989|pp=47–8, 148–163}}</ref>
 
1980년대에 들어서 리간 행정부의 경제성장 중심의 정책은 카슨의 저작을 반영한 환경정책을 되돌리게 되었다. <ref>{{harvnb|Lytle|2007|pp=217–220}}; Jeffrey K. Stine, "Natural Resources and Environmental Policy" in ''The Reagan Presidency: Pragmatic Conservatism and Its Legacies'', edited by W. Elliott Browlee and Hugh Davis Graham. Lawrence, KS: University of Kansas Press, 2003. ISBN 0-7006-1268-8</ref>
 
==Notes==
{{reflist|2}}
 
{{토막글|생물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