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바뀜

1 바이트 추가됨 ,  5년 전
 
== 역사적 평가 ==
당쟁의 폐해를 조선의 멸망 원인으로 보던 지적에 대해 [[일본]]의 [[식민사관]]의 영향이라는 설이 확산되었으나, 조선 시대에도 당대 지식인들의 당쟁에 대한 비판이 존재하였다. [[이익 (1681년)|이익]]은 '붕당론'을 통해 당쟁의 폐단을 지적하고 있으며, 당쟁의 원인은 관직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시데하라 아키라 등은 한국인의 민족성이 본래 싸움을 좋아하고, 잔혹하고, 사람의 목숨을 경시하기 때문에 당쟁이 가열되었다고 주장하였다<ref> 대한 제국 학정 참여관 시데하라 아키라(幣原 坦), 시학관 오다 쇼고(小田省吾) 그리고 호소이 하지메(細井 肇), 하야시 야스스케(林 泰輔)의 주장이다. {{서적 인용 |저자=신복룡
|제목=한국사 새로 보기
|발행일자=2001-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