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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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문화재 정보
|소재_국가 국가 = {{국기그림|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유형 유형 =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유형문화재]]
|그림 그림 = Replace this image male-ko.svg | 그림크기 = 150
|이름 이름 = 황학정<br />(黃鶴亭)
|지정_번호 번호 = 25
|지정연월일 지정 = [[1974년]] [[1월 15일]]
|소재지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9길 15-32
|소유자 소유 =
|제작_시기 시대 = 일제강점기
| 문화재청 = 21,00250000,11
|비고 =
}}
'''황학정'''(黃鶴亭)은 원래 [[광무]] 3년([[1899년]])에 활쏘기를 장려하는 고종의[[조선 고종|고종]]의 칙령 발표<ref name="황학정백년사">{{서적 인용 | 제목 = 황학정 백년사 | 저자 = 김집 外 | 출판사 = 황학정 | 연도 = 2001 | 월 = 1 }}</ref>와 함께 [[경희궁]] 회상전(會祥殿) 북쪽 담장 가까이 세웠던 궁술 연습을 위한 사정(射亭)이었다. 청-일-러 3국의 3파전에 근심하던 고종황제는 이곳에서 활을 쏘며 피로를 풀었다. [[1922년]]<ref>경성공립중학교의 기록에는 1923년으로 표기되어 있다.</ref> 일제가 경성중학교를 짓기 위해 경희궁을 헐면서 경희궁내 건물들이 일반에게 불하될 때 이를 받아 [[사직단]] 북쪽인 등과정(登科亭) 옛터인 현 위치에 이축하였다.<ref name="경성부사1">{{서적 인용 | 제목 = 경성부사 제1권 | 출판사 = 경성부| 연도 = 1934 | 쪽 = 356}}</ref>
 
황학정이 있는 사직동의 등과정 자리는 한말까지 궁술 연습장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등과정은[[등과정]]은 경복궁 서편 [[인왕산]] 기슭 옥동(玉洞)에 있던 [[등용정]](登龍亭)· 삼청동의 [[운용정]](雲龍亭)·사직동의 [[대송정]](大松亭, 太極亭)·누상동의 [[풍소정]](風嘯亭, 白虎亭)과 함께 인왕산 아래 서촌(西村) 오사정(五射亭)이라고 불렸다. 오사정을 비롯한 서울에 있던 이름 있는 활터는 일제 때에 전통 무술을 금지하면서 점점 사라졌다.
 
황학정의 활터는 전국에서 유명하였으며 광복 후에 계속 사용되었으나 6·25전쟁으로 건물도 파손되고 활쏘기도 중단되었다가 다시 중수되어 활터로 사용되고 있다. 과녁은 전방 약 145m 지점에 있으며, 1977년 일부 보수공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