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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룽지'''(주용기, {{zh-stp|s=朱镕基|t=朱鎔基|p=Zhū Róngjì}}, [[1928년]] [[10월 1일]] -)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제9대 국무원총리(재직:[[1998년]] 3월 - [[2003년]] 3월)이다.
 
[[후난 성]] [[창사]] 출신이며 [[본관]]은 [[당파 주씨]](棠坡朱氏)인데, 선조에 관하여 [[명나라]]의 개조 [[주원장]](朱元璋)의 제14대손이라는 설도 있다. 5세 때에 부모가 모두 사망하고 장학금을 얻어 고학하였다. 후난성의 재원으로 [[1947년]]에 우수한 성적으로 [[국립]] [[칭화 대학]] 전기과 전기제조과정에 입학하였다. 전란기였던 [[1948년]] 12월에 학생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49년]] 10월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51년]] 대학 졸업 후 동북인민정부 공업부에 배치되었으며 1952년 국가계획위 전기관리부문 소속. [[1957년]]의 반우파운동에서 [[1958년]] 우파로 비판대상이 되었고 국가계획위 소속은 유지됐으나 당적은 박탈되었다. 그뒤계획위 소속 전문학교 교사로 강등된 뒤 1969년에는 [[하방]](下放)되었고 집단농장에서 개조를 받으며 고초를 겪었다. 1975년 북경의 석유공업부 전기공정원으로 가까스로 일할 수 있었다.
 
[[1978년]]에 당적 회복 조치를 받아 복당하였으며 국가경제위원회에 다시 배임되었다. [[1982년]] 9월 제12회 당대회에서 중앙위원이 되었고 [[1984년]]에는 [[칭화 대학]] 경제관리학원 원장에 임명되었다. [[1987년]] [[상하이]] 시위원회 부서기, [[1988년]] 상하이 시장을 맡아 푸둥(浦東)지역 발전을 주도했으며 [[톈안먼 사태]] 때는 자제를 촉구해 시위없이 상하이에서 안정적으로 시정을 계속 이끌었다. [[1989년]] [[1989년 톈안먼 사건|천안문사태]] 이후 당총서기로 북경에 전출한 [[장쩌민]]의 후임으로 [[상하이]]시 위원회 서기로 진급했고 외자 도입과 공무원 부패의 단속에서도 수완을 발휘했다. [[덩샤오핑]]에 의해 [[1991년]] 국무원 부총리(부수상)에, [[1992년]]에는 중앙위원으로부터 3단 도약하여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었다. [[1993년]]에는 중국인민은행 총재를 겸임, 당시 중국내 문제가 되었던 [[인플레이션]]에 효율적으로 대응했다는 평을 받았다. [[1998년]] 3월부터 [[2003년]] 3월까지 [[장쩌민]] 국가주석 하에서 5년에 걸쳐 국무원 총리에 재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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