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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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9월 유엔총회에서 조약안이 채택됐으며 5대 핵강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를 포함해 154개국이 서명했다. 유엔의 부속 기관인 CTBTO (CTBT Organization)이 조약 가입 국가의 시찰과 감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조약은 '발전용 또는 실험용 원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라고 지명한 전 세계 44개국 모두가 서명하고 비준해야 발효한다. [[2004년]] 현재 44개 중 [[영국]]과 [[프랑스]] 등 31개국이36개국이 비준했으며비준했다. 5개국은 서명만 하고 비준은 하지 않았으며, [[인도]], [[파키스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비준은 물론 서명조차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서명과 비준을 모두 마쳤다. CTBT에 반대하는 국가들은 핵무기 감축이 선행되지 않을 경우 핵보유국의 기득권만 보장한다며 조약을 비판하고 있다.
 
== 개요 ==
이 조약은 모든 공간(우주 공간, 대기권에대기권, 수중, 지하)의 핵실험 실시, 핵폭발을 금지하고 있다. 이것은 부분적인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부분 핵실험 금지 조약)에서 금지하고 있지 않은 지하 핵실험도 금지 대상으로 한다.
 
== 과정 ==
[[제2차 세계대전]] 종결 후, 핵무기 보유 개발 경쟁이 전개되고, 다양한 핵 실험이 행해졌다. 그러나 핵무기의 위험과 잔인함이 서서히 드러나자, 민중의 반핵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1955년]] [[8월 6일]]에는 처음 《원자수소폭탄 금지세계대회》가 개최되는 등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세계적으로 핵실험 반대의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1959년 9월, 핵보유국이 주체가 되어 《제네바 군축회의》의 전신인, 《10개국 군축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이 군축위원회의 성과로서 [[1963년]] 8월, [[미국]], [[영국]], [[소련]]에 의해,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에 서명했다. 그러나 이것은 지하 핵실험 금지를 담은 것은 아니었다. 1994년 1월, 제네바 군축 회의는 지하 핵실험 금지를 포함한 본 계약 협상에 들어갔다. 협상은 장기간 계속 되었으나, [[인도]] 등의 반대에 의해 회의에서 채택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이 조약에 대한 세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호주]]가 중심이 되어 이 조약 초안을 유엔 총회에 제출하고 [[1996년]] 9월, 압도적인 다수의 찬성으로 채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