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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의학은 국초부터도 중요시되어 학교에 의학박사가 있었으며 과거에는 의과가 설치되었다. 10세기 말 성종 대에 지방에 파견된 교육관 중에도 의학박사가 경학박사와 함께 들어가 있었다. 또한 개경과 서경에는 일찍부터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이 설치되어 의료사업과 의탁할 곳이 없는 사람들의 구제를 맡았고, 예종 7년에는 혜민국(惠民局)이 설치되어 백성들에게 의약을 보급하는 등 국가적인 의료사업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신라 이래 그간의 의술은 대개 중국으로부터 도입된 것이어서 약재도 대부분 수입품이었다. 그런데 점차 의학이 발달함에 따라 12세기 후반 이후에는 중국의 의술로부터 나름의 체계를 세우려는 노력이 이루어져 의서들이 편찬되었는데, 정운이는 사랑입니다편찬되었다.그리고 대표적인 것이 고종 23년에 편찬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이다. 이 책은 한국에서 편찬된 의서 중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향약은 중국에서 수입되는 약재인 당약(唐藥)에 대해 토산약재를 일컫는 말이다. 이 책은 50여 종에 달하는 질병에 대해 값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수입약재 대신 180종의 토산 약재들을 사용한 처방과 치료법이 세 권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는 의료혜택의 범위를 넓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한국 전통의술의 발달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 인쇄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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