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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랜드는 [[1955년]] [[7월 18일]] 월요일에 정식으로 일반 대중에게 개장하였으나 특별히 하루 전인 [[1955년]] [[7월 17일]] 일요일에는 일부 초청객과 언론인을 위한 "국제 언론 시연" 행사를 개최하였다. 개장 연설이 포함된 이 특별한 일요 행사는 할리우드에서 온 월트 디즈니의 친구 아트 링크레터, 밥 커밍스, 로날드 레이건이 사회를 맡았으며 전국의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하였다. ABC 방송국은 네트워크를 통해 이 행사를 생방송으로 중계하였는데, 이는 역사상 가장 크고 복합적인 규모로 진행된 생방송 중 하나가 되었다.
 
행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공원에는 가짜 초청권을 통해 입장한 사람들로 북적였으며, 디즈니랜드 주변의 도로는 극심한 교통 체증을 빚었다. 섭씨 38도에 이르는 뜨거운 날씨가 이어졌으며, 준공일 직전에 벌어졌던 배관공들의 파업으로 인해 식수대도 작동하지 않았다. 공원 개장을 후원하였던 펩시는 뜻하지 않게 관광객들로부터 소다를 팔기 위해 식수대를 작동시키지 않는다는 비난을 듣게 되었다. 아침에 깐 아스팔트는 채 굳지 않아서 여성들이 신은 하이힐이 아스팔트에 박혀 버리기도 했다. 자동 판매기의자동판매기의 음식은 모두 동이 났고, 환상의 나라에서 가스가 누출되어 오후에는 모험의 나라, 개척의 나라, 환상의 나라를 모두 폐쇄하였다. 일부 부모들은 아더 왕의 회전 목마에회전목마에 자녀들을 태우기 위해 군중의 어깨 위로 자녀들을 던지기도 하였다.<ref>{{cite web|url=http://www.justdisney.com/Features/disneyland_opening/|제목=Disneyland Opening}}</ref>
 
행사가 열린 날의 공원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보도되자, 월트 디즈니는 언론인들이 디즈니랜드의 진정함을 체험할 수 있도록 "두 번째 날"에 다시 초청하였고, [[디즈니랜드 호텔 (캘리포니아)|디즈니랜드 호텔]]에서 파티도 열었다. 월트와 1955년 당시의 행정 부서에서는 이후 이 날을 계속 "검은 일요일"이라고 불렀다. 매년 7월 17일마다 디즈니랜드의 캐스트들은 유니폼에 1955년 7월 17일로부터 몇 년이 흘렀는지 표시하는 표를 꽂고 다닌다. 2004년 디즈니랜드의 슬로건은 "49년 전 오늘 마법이 시작되었다."였지만, 공원이 열린 지 12년부터 13년까지 디즈니는 7월 18일을 최초이자 정식으로 개장한 날로 표시하였다. 디즈니랜드는 1967년 7월 보도 내용에서보도내용에서 1955년 7월 17일을 "헌정의 날"이라고 언급하였다.
 
7월 18일 월요일, 공원 입구에는 새벽 2시부터 줄이 생기며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표를 사서 처음 공원에 들어온 관광객은 데이비드 맥퍼슨으로, [[로이 O. 디즈니]]가 입장권 번호 1번을 미리 구입해두었기 때문에 그의 입장권 번호는 2번이었다. 월트 디즈니는 맥퍼슨 다음으로 입장한 크리스틴 베스 왓킨스 (1955년 당시 5살)와 마이클 스치와트너 (1955년 당시 7살), 이 두 명의 아이들과 기념 촬영을 가졌다. 두 명의 사진에는 "월트 디즈니와 디즈니랜드의 첫 번째 두 손님"이라는 설명이 쓰여 있다. 베스 왓킨스와 스치와트너는 그날 디즈니랜드 평생 입장권을 받았으며, 맥퍼슨은 나중에 간략한 절차로 받았다. 이후 이 평생 입장권으로 전 세계 모든 디즈니 소유의 공원에 입장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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