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디 바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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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구단 =
|등번호 =
|선수 사진 파일명 = Randy Bass in Hanshin Umeda IMG 2878 20131222.JPG
|사진 사이즈 = 250
|사진 설명 = 랜디 바스(2013년 12월)
|국적 = {{USA}}
|출신지 = [[오클라호마 주]] [[로턴 (오클라호마 주)|로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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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신 타이거스 시절 ===
==== 1983년 ~ 1984년 ====
1983년 일본에 오면서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 정확한 성은 ‘'''바스'''’({{lang|ja|バス}})라고 발음하지만<ref>2007년에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소속했던 애덤 바스와 같은 성이지만, 이쪽은 등록명을 ‘바스’({{lang|ja|バス}})로 등록하였다.</ref> 당시 [[한신 버스]]가 구단 모회사인 [[한신 전기 철도]]의 직영 사업이었던 것도 있어서 호조를 보이고 있을 때 ‘한신 버스 대폭발’({{lang|ja|阪神バス大爆発}}), 부진에 시달렸을 때에는 ‘한신 버스 고장’({{lang|ja|阪神バスエンコ}}), ‘한신 버스 대정체’({{lang|ja|阪神バス大渋滞}}) 등 언론에서 야유했던 것을 싫어했던 구단측의 배려로 일부러 음을 늘린 ‘'''바-스'''’({{lang|ja|バース}})를 등록명으로 삼았다.<ref>이것에 대해서는 미즈모토 요시마사가 보도 자료에서 ‘Bass({{lang|ja|バス}})’로 배부되었을 때 미국 시절에 다리를 다쳐서 달릴 수 없는 것을 알고 프런트에게 쳐도 ‘한신 버스, 고장만 난다’치지 못해도 ‘한신 버스, 브레이크’라고 쓰이자 구단에게 말하여 급하게 ‘버스가 아니고 바-스다’라고 정정발표를 했다고 말했다. 일본 진출 첫 해인 1983년에 17타수 무안타 였을 때는 ‘버스였으면 버스 스톱이 될 뻔했다’라는 구단 프런트의 블랙조크도 나왔다고 한다.</ref> 한신에 입단한 애당초에는 [[후지타 다이라]]가 [[1루수]]로 자주 기용된 적도 있어 [[우익수]]로서 수비를 하고 있었지만 위에서 말한대로 전력질주를 할 수 없던 것과 후지타가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쇠약해진 것에서 나중에 1루수로 고정되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시즌 초반에 출발이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1년차부터 타율 2할 8푼 8리, 35홈런, 82타점으로 장타력을 보여줬다. 또, 같은 해 시즌 종반에는 25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여 이것은 2001년에 [[히야마 신지로]]가 28경기로 경신하기 전까지 구단 기록이었다.
 
1983년에 바스는 방출될 가능성이 있었다. 작년 후반기에 팀이 큰 활약을 한 적도 있어 한신 팬들은 우승을 기대하였지만 4월에 2위로 종료했음에도 불구하고 5월 도중에는 1승 15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컨디션이 나빠진 바스가 팀 부진의 원인이라는 비판도 많았고 같이 입단했던 공을 방망이 중간에 잘 맞추는 스티브 스트로터가 일본 야구에 더 적합하다는 평가가 높아졌다. 그런 가운데 선발 투수진이 얇은 한신은 투수 리처드 올센을 획득했는데 올센을 1군에 승격시키기 위해 외국인 범위의 관계로 스트로터와 바스를 둘 중에 누군가를 방출할 필요성을 느꼈지만 이 때 한신이 방출한 것은 스트로터였다. 당시 바스는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변화구를 모두 헛스윙 했지만, 구단은 바스의 파워 외에도 태도, 노력, 인격을 평가하였고 그 기대대로 바스는 단번에 컨디션을 회복하였다. 또, 1984년 시즌 종료 후에도 앞에 말한 수비의 불안으로 방출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이것을 감독으로 갓 취임한 [[요시다 요시오]] 감독이 구단 프런트에게 바스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잔류시켰다고 한다.<ref>2008년(방송 날짜는 미상)에 방송된 [[아사히 방송|ABC TV]] 《토라반》 중에서</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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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피소드 ==
=== 이름에 대해 ===
정확한 성은 ‘'''바스'''’({{lang|ja|バス}})라고 발음하지만<ref>2007년에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소속했던 애덤 바스와 같은 성이지만, 이쪽은 등록명을 ‘바스’({{lang|ja|バス}})로 등록하였다.</ref> 당시 [[한신 버스]]가 구단 모회사인 [[한신 전기 철도]]의 직영 사업이었던 것도 있어서 호조를 보이고 있을 때 ‘한신 버스 대폭발’({{lang|ja|阪神バス大爆発}}), 부진에 시달렸을 때에는 ‘한신 버스 고장’({{lang|ja|阪神バスエンコ}}), ‘한신 버스 대정체’({{lang|ja|阪神バス大渋滞}}) 등 언론에서 야유했던 것을 싫어했던 구단측의 배려로 일부러 음을 늘린 ‘'''바-스'''’({{lang|ja|バース}})를 등록명으로 삼았다.<ref>이것에 대해서는 미즈모토 요시마사가 보도 자료에서 ‘Bass({{lang|ja|バス}})’로 배부되었을 때 미국 시절에 다리를 다쳐서 달릴 수 없는 것을 알고 프런트에게 쳐도 ‘한신 버스, 고장만 난다’치지 못해도 ‘한신 버스, 브레이크’라고 쓰이자 구단에게 말하여 급하게 ‘버스가 아니고 바-스다’라고 정정발표를 했다고 말했다. 일본 진출 첫 해인 1983년에 17타수 무안타 였을 때는 ‘버스였으면 버스 스톱이 될 뻔했다’라는 구단 프런트의 블랙조크도 나왔다고 한다.</ref>
 
=== 수염 ===
바스의 [[수염]]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으나, 1986년 스프링 캠프를 앞두고 [[질레트]]의 [[면도기]] [[광고]]에 수염을 깎은 모습을 선보여 팬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 광고는 이틀 연속으로 신문에 게재된 것으로 첫날이 ‘내일 나를 봐달라’라는 캡션으로 면도 전 사진, 다음날이 면도 후의 사진이었다([[티저 광고]]). 개막에 대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에는 이전과 다름없이 수염이 원래대로 되어 있었다. 이 ‘면도료’는 당시로서 파격적인 1억 엔이었는데 덧붙여 바스를 모델로 기용한 질레트의 경상 이익은 약 100억 엔이 되었다. 또한 1983년 일본 방문 당초에는 턱수염이 없는 등 후년 친숙하게 되는 얼굴 생김새와는 약간의 차이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