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터베리 읍성: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3번째 줄:
 
11세기에 브리튼을 침공한 [[노르만족]]은 켄터베리에 무혈입성했고, 12세기 동안 성곽은 방치되어 보존 상태가 나빠져 군사적 가치가 하락했다. 그러다 [[백년전쟁]]으로 프랑스의 침공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1363년 켄터베리 성곽은 다시 보수되었다. 이후 30년에 걸쳐 성곽이 재건되었고, 그때까지 남아있던 로마 시대의 성곽도 석재로 다시 지으면서 합쳐졌다. 성곽을 따라 24개의 망루가 건설되었고 돌과 벽돌로 지은 문루들도 계속 지어졌다. 이후 17세기에 성곽의 일부가 [[잉글랜드 내전]] 당시 의회파에 의해 고의적으로 훼손되었고 성문들은 불탔다. 1660년에 [[찰스 2세]]가 [[잉글랜드 왕정복고|왕정복고]]한 뒤 성문들이 재건되었다.
 
18세기와 19세기에 켄터베리 성곽은 도시의 확장에 딷라 훼손되었다. [[웨스트게이트 (켄터베리)|웨스트게이트]]를 제외한 나머지 성문들이 모두 파괴되었고, 새로운 도로와 건물을 짓기 위해 성곽 일부가 헐렸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의 폭격으로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했다. 그것을 모두 견디고 남아 있던 성곽과 문루들은 전후의 부흥기에도 계속 살아남았고, 일부 구간에서는 완전한 복원이 이루어졌다. 현재 원래 성곽의 절반 정도가 남아 있으며, 남아있는 성곽이 둘러싸고 있는 면적은 130 에이커(53 헥타르) 정도이다.
 
== 역사 ==
=== 3세기 ~ 4세기 ===
 
=== 5세기 ~ 11세기 ===
 
=== 11세기 ~ 13세기 ===
 
=== 14세기 ===
 
=== 15세기 ~ 16세기 ===
 
=== 17세기 ~ 19세기 ===
 
=== 20세기 ~ 21세기 ===
 
== 건축양식 ==
 
== 같이 보기 ==
 
== 주 ==
 
== 참고 자료 ==
 
{{토막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