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준영 (1892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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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이다. [[휘문의숙]]과 [[와세다 대학]] 상과를 졸업하고 [[1918년]]에 [[조선은행]] 서기가 된 이래 금융인 및 기업인으로 활동했다.
 
[[1920년]]에는 삼일산업주식회사 전무에 오른데 이어 사장이 되었으며, 거창자동차주식회사 감사역에 추천되었다. 양조업에도 손을 대어 함양주조조식회사 중역을 지냈고, 지역에서 금융조합 감사, 조합장, 농촌지도위원회 위원을 역임하고 경상남도 평의원에 추천되는 등 함양 지역의 유지로 활동했다. [[1934년]]부터는 약 1년 동안 함양면장을 맡기도 했으며, 각 학교의 학무위원으로 교육 방면에서도 활동했다.
 
[[1935년]]에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수록되어 있다.<ref>{{뉴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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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대한민국 제1공화국|제1공화국]] 정부 수립 후에 [[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라 반민특위가 활동을 시작한 [[1949년]]에 반민행위 혐의자로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러나 반민특위의 활동이 무력화되면서 처벌은 받지 않았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와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중추원 부문에 모두 선정되었으며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