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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근'''(金潤根, <small>일본식 이름: </small>金村潤根, [[1909년]] [[12월 16일]] ~ ?)은 [[일제 강점기]]부터 활동한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 생애 ==
[[황해도]] [[봉산군]] 출신이다.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33년]]에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하였고, 이듬해에는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조선총독부]] 판사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 동안 평양지방법원 검사국을 거쳐 부산지방법원과 전주지방법원에서 판사로 재직했다. [[1945년]] [[태평양 전쟁]] 종전과 함께 [[미군정]]이 시작되었을 때 경성특별재산심판소 소장에 취임했고, [[1946년]]에는 서울고등심리원 판사에 취임했다.
 
이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와 원장서리를 거쳤으며, [[대한민국 제1공화국|제1공화국]]에서 [[대한민국 법무부]] 차관도 지냈다. [[1951년]]에 차관직에서 물러난 뒤 [[변호사]]를 개업해 활동하며 [[1972년]]에는 재야 법조계 수장인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인터뷰>"당리보다는 민권 위한 단체 되야죠" 21대 대한변협 회장 金潤根씨
|출판사=조선일보
|작성일자=1972-05-30
|쪽=4면
}}</ref>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사법 부문에 선정되었다.
 
== 약력<ref>{{행정통계 인물|1038|n0213|김윤근}}</re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