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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에서 박은지는 주로 홍보 분야에 주력했다. 박은지의 지인은 그의 노력에 대해 "대변인 시절 기자들에게 문자 폭탄을 돌렸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당 대변인 자격으로 언론에 글을 기고하거나 방송에 출연해 발언하기도 했다. [[민족 해방]](NL) 계열 운동권에 비판적인 노동당의 정치 성향 때문에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사건]] 등에 관한 발언을 자주 했다.
 
총선 이후인 2012년 8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한윤형]], [[김민하]] 등 당원들과 함께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했다,
 
진보신당이 노동당으로 재편된 이후에도 당 부대표,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대변인 직은 2014년 1월 사임했다.
 
== 사망 ==
2014년 3월 8일 자택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으며, 사인을 자살로 추정된다. 유서는 없었다. 박은지가 죽기 전 공식 석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대변인직 사임의 변<ref>http://www.laborparty.kr/bd_news_comment/869237</ref> 이다. 언론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이 글에서 박은지는 "노동당에게 기자님 한 명의 조그마한 관심이 절실하다"며 "지금은 작은 원외정당이지만 노동당이 갖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작은 관심이라도 기울여주시기 바란다"라고 썼다.
 
초창기부터 박은지와 함께 활동한 [[김종철]] 전 진보신당 부대표는 박은지가 사망하기 며칠 전에도 만난 바가 있었다고 3월 13일 [[국민TV]] 인터뷰에서 밝혔다. 인터뷰에서 김종철은 박은지가 "주변 한두 사람들에게 굉장히 우울한 문자를 보냈다", "심리 상태가 안좋았다"며 죽음의 배경을 설명했다. 인터뷰어였던 시사평론가 [[김용민]]은 박은지의 생애에 대해 "장애인 아버지, 기간제 교사, 싱글 맘, 여성 가장 그리고 소수 정당 정당인. 박은지 부대표의 삶은 말 그대로 노동당이 옹호하고자 하는 분들과 많이 중첩된다"고 평했다.<ref>http://news.kukmin.tv/news/articleView.html?idxno=3728</ref>
* [[전국학생연대회의]] 집행위원장
* 서울 [[국사봉중학교]] 교사
* 2008년 [[18대대한민국 총선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동작을 김종철 후보 수행비서
* [[진보신당]] 서울 동작당협 부위원장
* 진보신당 언론국장, 부대변인 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