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턴 워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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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
1950년 12월 23일, 훗날 육군 대장이 되는 아들인 [[샘 S. 워커]] 대위의 [[은성 훈장|은성 무공 훈장]] 수상을 축하해주기 위해 가던 중 [[의정부]](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자리)에서 [[교통 사고]]로 죽었다.<ref>당시 지휘관용 차량인 M38은 현재 미군이 사용하는 험비형과는 달리 지프형은 현재 민수용인 랭글러가 보여주듯 차고가 높아서 중심점이 높다. 그로인하여 서스펜션이 불안하였는데 결국 이문제로 차량이 전복이되었고 결국 이문제로 한국전쟁이후 미군은 당시 지휘관용 차량을 차고를 내리는 형식을 가진다. 그후 70~80년대 험비 즉 고기동전술차량은 차고를 낮추고 바퀴를 키워 전복이 되지 않도록 개선된다.</ref> 그가 타고 있던 지휘관 지프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민간인 차량을 피하다가 굴러떨어졌으며, 시신은 아들에 의해 수습되어 미국 본토로 보내졌다. 이듬해 1951년 1월 2일, 알린턴 국립 묘지에서 화장되었으며, [[4성 장군|대장]]으로 추서되었다.<ref>{{웹 인용 |url=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979575 |제목=[6·25 전쟁 60년&#93;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17) 떨어진 6·25의 별- 중앙일보 뉴스 |저자=백선엽 |출판사=동아일보 |작성일자=2010-01-22 |확인일자=2012-10-28}}</ref>
 
월튼 워커 중장의 죽음으로 공석이 된 8 군 사령관직은 [[매슈 리지웨이]] 중장이 후임으로 취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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