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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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파격적인 외관은 흔히 히피라는 용어의 대명사가 되었는데, 남자의 경우 장발과 멋대로 기른 수염에다 커다란 펜던트를 착용하는 것이 관례이고, 여자들은 미니스커트에 샌들을 착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러한 모습은 생활양식에 배어 있는 보수적인 가치를 적대시하는 이들의 태도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른바 '히피 빌리지'를 조성하여 자신들끼리의 공동체생활을 하고 있다.
또한 열정과 히피의 문화로는 사이키델릭 음악을 예로 들수 있는데, 이는 전율이나 환각상태를 느끼게 하고 유도하는 음악으로 알려져있다. 이것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사이키 델릭은 어떤 기분 장르처럼 뚜렷한 구분점들 보다는 히피문화의 특성 그대로 자유분방한 형식을 추가한다. 사이키델릭 밴드들이 가장 많이 모이고 히피문화의 중심지는 샌프란시스코였다. 60년대 후반과 70년 초엽의 샌프란시스코는 사이키델릭의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좁은의미로는 샌프란시스코 락을 사이키델릭락이라고 하기도 한다. 또한 히피문화의 대표적인 상징으로는 우드스탁을 예로 들수 있는데, 이것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락페스티발의 시초였으며, 그 시대를 대표하는 모든 뮤지션들의 대거 출연과 40만명이 넘은 관객들로 당시 락 음악에 대한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사건이었다. 하지만 당시 젊은 세대들이 가지고 있던 물질주의적이고 실리주의적인 기존체계에 대한 저항의식은 이 페스티발 기간동안 마리화나와 혼숙등의 문제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2박3일동안 진행되었던 공연에서는 당시 락음악을 이끌던 짐 모리슨, 지미헨드릭스, 제니스 조플린, 산타나, 핑크 플로이드 등의 스타들이 대거 등장하였다. 8월 15일 부터 17일까지 3일동안 지속된 이 페스티발은 록뮤직 역사에서 하나의 전설이자 60년대 젊은이들의 저항의식의 표현이었다.
 
== 반전운동 ==
 
초기에 샌프란시스코 헤이트 에쉬버리에서 히피의 성향을 가진 젊은이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후에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이란 운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람이 더더욱 몰리게 되자 그들의 소망을 많은 종류의 퍼포먼스나 음악, 사회적 운동으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1.버클리 대학의 플라워 파워
 
샌프란시스코는 태평양을 향해 열려 있다. 그 너머에 일본과 베트남이 있다. 때문에 이 도시는 전쟁의 광기에 휩싸인 채 지옥으로 떠나야 하는 젊은이들의 집결지였다. 아메리카 대륙의 꽃들이 전쟁에 반대하며 이곳으로 모인 이유가 거기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시의 동쪽 다리를 건너면,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학풍을 지니고 있는 버클리 대학이 있다. 히피의 광란이 혁명으로 전화해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1969년 봄, 버클리 대학은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대학 주변의 건물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학생들과 시민들은 그 폐허 위에 나무와 꽃을 심고 대학 당국과 맞섰다. 로널드 레이건 주지사는 이 '민중의 공원(People's Park)'을 파괴하라고 명령했고 군대가 들어선다. 그들 앞에 맞선 히피들과 학생들은 총 대신 꽃을 들었다.
 
== 국내외 참고 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