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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육군종합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1958년 [[조선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79년]] 11월부터 제7대 [[수도경비사령부|육군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전두환]]이 [[12.12 군사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를 반대하여 전두환의 반란군과 맞서 싸웠으나, 부하들의 배신으로 인해 반란군에게 패배했다. 이후 육군 소장으로 강제예편되었다. 이때 쿠데타에 협력할 것을 종용하는 [[전두환]]에게 격노하여 그를 '반란군'이라고 욕하면서 "거기 꼼짝 말고 기다리고 있어라. 지금 전차를 몰고가서 네놈들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전두환 부대와 맞서 싸우다가 직위해제되었다. [[1982년]]부터 [[1988년]]까지 한국증권전산주식회사 사장을 맡았고 [[1988년]]부터 [[1995년]] [[3월]]까지 한국증권전산주식회사 회장을 맡았다. [[1993년]]에는 [[전두환]]과 [[노태우]]를 [[김영삼 정부]]에 고발하고자 [[정승화]], 이건영 등과 함께 작은 모임을 가진 바 있다. [[1994년]] [[4월]] 부터 [[1997년2000년]] [[4월]]까지 3년간6년간 제27대제27ㆍ28대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대한민국 제16대 국회|16대 국회]] 당시 [[새천년민주당]]의 전국구 국회의원이었는데, [[2002년]]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16대 대선]]을 앞두고 반 [[노무현]] 진영(일명 '후단협')에 가담했다. 장태완은 민주당에서 탈당하려고 했지만 민주당 전국구 의원이었기에, 민주당 [[한화갑]] 대표에게 자신을 당에서 제명해줄 것을 요구해 물의를 빚었다. [[2010년]] [[7월 26일]], 서울아산병원에서 별세했다. 빈소에는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과 육사 14기 출신으로 하나회 총무를 지낸 [[이종구]] 전 국방장관 등 과거 신군부 인사들도 방문해 조문했다.<ref>{{뉴스 인용|제목=‘12·12 쿠데타’ 맞선 참군인|url=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00728027021|출판사=서울신문|저자=오이석|작성일자=2010-07-28|확인일자=2010-07-31}}</ref>
 
== 학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