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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년 신흠과 전의 이씨 사이에서 2남 5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638년 정언, 지평을 거쳐 [[집현전]]부수찬이 되었다.<ref>《조선왕조실록》 인조 37권, 16년(1638 무인 / 명 숭정(崇禎) 11년) 10월 5일(갑오) 3번째기사</ref> [[병조]]좌랑 시절에 역졸에게 곤장을 쳐 죽였다는 이유로 탄핵을 당했으나<ref>《조선왕조실록》 인조 37권, 16년(1638 무인 / 명 숭정(崇禎) 11년) 10월 16일(을사) 2번째기사</ref> 이듬해 [[사간원]]헌납에 임명되었다.<ref>《조선왕조실록》 인조 38권, 17년(1639 기묘 / 명 숭정(崇禎) 12년) 1월 19일(정축) 1번째기사</ref> 1640년 [[청나라|청]]에 [[소현세자]]의 귀환을 요청한 일로 [[이경헌]] 등과 함께 유배를 당하기도 하였다.<ref>《조선왕조실록》 인조 40권, 18년(1640 경진 / 명 숭정(崇禎) 13년) 윤1월 6일(무자) 1번째기사</ref> [[조선 효종|효종]]이 즉위하자 가선 대부(嘉善大夫)로 가자되었고,<ref>《조선왕조실록》 효종 2권, 즉위년(1649 기축 / 청 순치(順治) 6년) 10월 24일(기유) 1번째기사</ref> 개성유수를 거쳐 1653년 [[도승지]]가 되었다.<ref>《조선왕조실록》 효종 11권, 4년(1653 계사 / 청 순치(順治) 10년) 8월 6일(무진) 1번째기사</ref> 이후 현종 원년에 병을 얻어 죽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신면에신익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인용문|집안 대대로 유아(儒雅)했는데 익전 역시 문사(文辭)에 뛰어났다. 사람됨이 순박하고 겸허하였으며, 명가(名家)의 자제로 화현직(華顯職)을 역임하였는데, 권요(權要)의 직책에 당하게 되면 사양하며 피하고 처하지 않았다. 형의 아들 신면(申冕)이 권력을 좋아하여 패거리를 끌어 모으자 마음속으로 매우 싫어하며 늘 이 점을 자제들에게 경계시켰다. 신면이 이미 치욕스러운 죽음을 당하고 딸이 숭선군(崇善君) 이징(李澂)에게 시집갔어도 화복(禍福)의 갈림길에서 전혀 오염을 받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고들 인정하였다. 만년에 더욱 염정(恬靜)한 생활로 일관하며 세상 일에 참여하지 않고 끝까지 아름다운 이름을 간직하다가 죽었다.|현개 2권, 1년(1660 경자 / 청 순치(順治) 17년) 2월 30일(을묘) 2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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