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하드리아노 6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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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은 이미 부패하여 고질적인 악습이 만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거부하고 있었다. 신성 로마 제국에서는 젊고 호전적인 성향의 제후들이 황제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고자 하였으며, 소위 [[종교개혁]]이 발발하면서 독일 전역에 반란이 일어나 급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또한, [[오스만 제국]]의 침입으로 기독교 세계는 큰 위협을 받고 있었다. 육지에서는 [[헝가리 왕국|헝가리]]의 [[베오그라드]]가, [[지중해]]에서는 [[로도스 섬]]이 오스만 군대의 위협을 받아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ref name="Pope Adrian VI">[https://en.wikisource.org/wiki/Catholic_Encyclopedia_(1913)/Pope_Adrian_VI "Pope Adrian VI". Catholic Encyclopedia. New York: Robert Appleton Company. 1913.]</ref>
 
하드리아노 6세는 대사 체계의 개선을 시도하는 등 당시 비평을 많이 받았던 [[대사 (가톨릭)|대사]]의 무분별한 남용을 해소하려고 하였으나,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추기경들의 방해를 받게 되었다. 그는 또한 교황 레오 10세 시절인 수년 전부터 소득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선금을 받고 교회법적으로 성립이 불가능한 혼인 장애(조당)의 해소가 암암리에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드리아노 6세는 과거에 [[스페인]]에서 일할 때도 말과 풍습이 달라 어려움이 많았는데 [[로마]]에서의 생활도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로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