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이우스 율리우스 아그리콜라: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14번째 줄:
브리타니아는 내전기 이래로 해마다 터지는 반란에 시달렸고, 총독 마르쿠스 웨티우스 보라티누스는 온건한 인물로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 이에 보다 강경한 인물이던 퀸투스 페테리우스 케리아리스가 총독으로 교체되고, 그의 지휘 아래서 아그리콜라는 자신의 재능을 펼쳐보였다. [[75년]]에 임무를 마치고 아그리콜라는 [[파트리키]]에 추가되어 갈리아 아퀴타니아의 총독이 되었다. [[77년]]에는 로마로 돌아와, 보결 [[집정관]]으로 뽑혔다. 이듬해에는 딸을 [[타키투스]]에게 시집보냈다. 이듬해 다시 총독으로 브리타니아로 향했다.
 
[[78년]] 여름에 아그리콜라는 로마 기병을 섬멸시킨 오르도비치 족을 토벌하고자 북쪽으로 [[웨일스]] 원정에 나섰고, 북상하여 [[앵글시 섬|모나 섬에섬]]에 상륙했다. 이곳은 [[61년]]에 수에토니우스 파우리누스가 현지인들을 철퇴시키고 차지한 곳으로 브리타니아 현지 사람들에게 탈환되어 있었다. 아그리콜라는 이 땅을 로마화, 즉 로마식 건물을 지어 지위 높은 자의 자식에게 로마식 교육을 시킴으로써 행정 부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그는 칼레도니아에도 원정하여 로마군을 타우스 강 북쪽으로 진군시키고 성을 쌓았다고 한다.
 
[[82년]]에는 「처음 배로 항해한 로마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백성을 쳐부수었다」고 하는데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지는 현재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클라이드 강]] 하구에 있었다고 하지만, 어떤 사람은 [[아일랜드]]가 아니냐고 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아그리콜라가 아일랜드와 접한 브리타니아 해안에 성을 쌓았다는 것이며, 타키투스의 기술에서는 아그리콜라가 1개의 군단과 현지의 보조 군사로 섬을 정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확실히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