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흥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234 바이트 제거됨 ,  5년 전
편집 요약 없음
태그: m 모바일 웹
그 후 [[1945년]] [[8월 15일|8월15일]] 일본의 항복으로 해방이 되면서, [[소비에트 연방]]의 관할지역으로 되어 있었다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1948년]] [[9월 9일]]에 건국하고, [[지방행정개혁]]을 실시하면서 [[함경남도]]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함흥시는 [[조선전쟁한국전쟁]] 때 공공시설과 수많은 주택이 파괴되고 막대한 손실을 입었는데, [[천리마운동]] 때 2차선도로를 구축하고 고층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새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천리마운동 때 도시개발을 할 때에는 소련과 [[동독|독일민주공화국]]의 지원이 있었다. 새 시가지는 대부분 중앙유럽의 공산주의 나라의 도시들처럼 바둑판형의 계획도시로 탈바꿈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1960년]]에 함흥시를 직할시로 승격시켰다. 그러나 [[1970년]]에 다시 [[함경남도]] 도청소재지로 돌아왔다. 이때 새로 생긴 군이 [[덕산군]](옛 덕산구역), 퇴조군(옛 퇴조구역, 현 [[락원군]]) 등이다. 덕산군은 다시 [[1974년]] 함흥시 회상구역에 편입되어 폐지되었다.
 
이 도시는 [[1992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에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만든 예술영화인 〈[[도시처녀 시집와요 (영화)|도시처녀 시집와요]]〉의 촬영지로 유명하며, 주요 관광지는 마전유원지와 [[함흥대극장]], 그리고 경기장와 함흥본궁이 있으며 그중에서, 대극장은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로 만들어져 대극장이라는 이름에 맞게 크고, 웅건하게 솟아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2010년]]에 흥남비날론련합기업소를 현지지도를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함흥시민들이 동원하여 진행된 군중대회에 참석하였다.
 
[[2001년]] 8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함흥시에서 [[흥남구역]], 해안구역, 흥덕구역과 사포구역의 일부를 떼어 흥남시로 명명하고 주요산업시설을 흥남시에 옮겼으며, 함흥시의 각 행정구역들을 폐지하였다. 그러나 [[2005년]]에 흥남시는 다시 함흥시로 돌아왔다.

편집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