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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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가 되어 영토를 북쪽으로 더욱 확장했고, [[조선 세종|세종]]때 [[육진]]을 개척하면서 지금의 함경도의 영역이 완성되었다.
 
[[조선 태종|태종]] 13년(1413년)에 도내 영흥부(永興府)와 길주목(吉州牧)의 이름을 따서 '''영길도'''(永吉道)가 되었다. [[조사의의 난]]이 일어나자 [[1416년]]에 영흥을 화주목(和州牧)으로 강등하고 함주목(咸州牧)을 함흥부로 승격하여 감영을 함흥으로 옮기고 '''함길도'''(咸吉道)로 개칭하였다. [[조선 세종|세종]] 때 화주목이 영흥대도호부로 승격한 이후에도 함길도라고 부르다가, 길주에서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조선 예종|예종]] 원년([[1468년]])에 길주목을 길성현(吉城縣)으로 강등하고 길주대신 경성도호부의 머리글자를 따서 '''함경도'''(咸鏡道)가 되었다. [[조선 성종|성종]] 1년(1469년)에는 함흥에서 반란군을 따라 관찰사를 살해했다 하여 함흥부를 군으로 강등하고, 감영을 다시 영흥으로 옮기고 영흥과 안변의 머리글자를 따서 '''영안도'''(永安道)가 되었다. [[조선 중종|중종]] 4년 ([[1509년]])에 감영을 함흥으로 옮기고, 함흥을 다시 함흥부로 승격시키고 영안도도 '''함경도'''로 개칭하였다. 이후 함경도라는 명칭이 정착되었다.
 
[[1895년]]에 [[팔도]]가 폐지되고 [[이십삼부]]가 설치되면서 함흥부, 갑산부, 경성부로 분할되어 함경도는 폐지되었다. [[1896년]]에 이십삼부가 폐지되고 [[십삼도]]가 설치되면서 함흥부와 갑산부를 합쳐 [[함경남도]], 경성부는 [[함경북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