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왕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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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가회방(嘉會坊) 사저
|사망일 = 영조 33년(1757) 2월 15일
|사망지 = 창덕궁 관리합대조전(觀理閤大造殿)
|능묘 = [[홍릉 (정성왕후)|홍릉]]
|전임자2 = [[선의왕후 (조선)|선의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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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질고 너그러운 성품을 가졌다고 전해지며 생전에 [[정빈 이씨]]의 소생인 [[조선 진종|효장세자]]와 [[영빈 이씨]]의 소생인 [[조선 장조|사도세자]]를 친아들 처럼 대하였다.
 
그러나 남편인 영조가 장수한 탓에 60대에 이르러서도 [[대비 (칭호)|대비]]가 되지 못하다가 [[1757년]], [[창덕궁]] 관리각[[대조전]](觀理閣大造殿)에서 66살의 나이(1757년 4월 3일(음력 2월 15일))로 시어머니인 [[인원왕후|혜순자경대왕대비]]보다 먼저 세상에 떠났다. 능은 [[경기도]] [[고양시]]의 [[서오릉]] 내에 위치한 '''[[홍릉 (정성왕후)|홍릉]]'''이다.
 
[[1757년]], 66살의 나이로 정성왕후가 승하하자 영조는 정성왕후의 능을 아버지인 [[조선 숙종|숙종]]의 명릉(明陵) 근처에 만들고 훗날 자신이 정성왕후의 옆에 묻히기 위해 옆자리를 비워놓았으나 [[1776년]], 영조가 승하한 뒤 손자인 [[조선 정조|정조]]는 당시 왕대비였던 영조의 계비(繼妃)인 [[정순왕후 (영조)|정순왕후]]를 의식하여 현재의 [[동구릉]] 위치에 영조와 정순왕후의 무덤인 [[원릉]]을 조성하였고 결국 정성왕후는 옆자리가 비워진채 홍릉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