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목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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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997년]]에 5촌 숙부 [[고려 성종|성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후 모후(母后) [[헌애왕후]]를 [[헌애왕후|응천계성정덕태후]]로 존칭했다. 관리의 봉급제도인 [[전시과]](田柴科)를 개정하고 학문을 장려하는 등 치적이 많았으나 아들이 없었다.
 
[[천추태후]]는 외척인 [[김치양]](金致陽)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왕으로 삼고자 [[김치양]]과 함께 음모를 꾀하여, 왕의 당숙이자 사촌인 [[고려 현종|대량원군]](大良院君) [[왕순]](王詢)을 승려로 만든 뒤 죽이려고 하였다.
이를 간파한 목종은 [[평양직할시|서경]](西京) 도순검사(都巡檢使) [[강조]](康兆)에게 [[대량원군]]의 호위를 명하였으나, 오히려 [[강조]]에 의해 천자의 자리에서 폐위되어 양국공(讓國公)으로 강등된 후 [[경기도]] [[파주]] 접선 해안가에서 [[강조]]가 보낸 자객에 의해 살해되었다.
 
[[강조]]는 [[김치양]] 부자를 숙청하고 [[고려 현종|대량원군]]을 왕위에 올렸는데, 그가 즉 제8대 [[고려 현종|현종]](顯宗)이다. 목종의 능은 공릉(恭陵)이며 현재 위치는 알 수 없으나 [[개성]] 동쪽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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