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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jongwoo (토론 | 기여)
그의 학문 즉 성리설의 특징은 논리적이다. 반면에 이황은 체험을 중시한 것이었다.
Iamdwlee (토론 | 기여)
→‎개혁 방안: 변법경장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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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 방안 ====
율곡 이이가 말하는 변법경장(變法更張)은 나라의 기강이 무너져 제대로 돌아가지 않음을 지적한 뒤 주장한 것으로서 다음 내용을 가지고 있다.
1. 문벌이나 출신보다는 능력 있는 사람을 기용하자.
2. 평민을 포함하여 폭넓게 인재를 양성하자.
3. 중앙에서는 외척의 권력 집중화를 막고, 지방에서는 수령의 자질을 높이며 이서(吏胥)들에게도 녹봉을 주어 민폐를 막아야 한다.
4. 붕당을 막기 위해서는 사림의 공론을 존중하고 사기를 높여야 한다.
5. 민생을 괴롭히는 방납을 시정해야 한다.
6. 왕실 사유재산을 억제하고 왕실의 경비를 줄여야 한다.
7. 군포에 대한 [[족징]]과 [[인징]]을 금지해야 한다.
8. 공노비의 선상(選上)을 개선하여 부담을 줄여야 한다.
9. [[사창제]]를 실시하여 빈민을 구제해야 한다.
이는 율곡 이이가 당시 개혁적인 성격을 지녔음을 말해준다.
 
===== 군제와 공직 개혁 =====
또 [[1583년]](선조 16) 병조판서에 임명되고, 병조판서로 시작된 그해 음력 2월에는 국방 강화를 위해 《시무육조》를 계진하였는데 내용은 첫째 어진이를 등용하시오, 둘째 군대와 백성을 제대로 키우시오. 셋째 재용(財用)을 넉넉하게 마련하시오, 넷째 국경을 견고하게 지키시오, 다섯째 전쟁에 나갈 군마(軍馬)를 충분하게 길러야 합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교화(敎化)를 밝히라는 것이었다. 같은 해 [[음력 4월]] 다시 ‘봉사’(封事)를 선조에게 올려 그동안 주장했던 폐정에 대한 개혁을 실시할 것을 다시 반복해서 요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