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헌 국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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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김규식 김구 불참, 이시영 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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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제헌국회 총선 의석수.svg|thumb|400px|right|[[1948년]] [[5월 30일]] [[제헌국회]] 총선 의석수]]
 
1948년 5월 31일 월요일 아침 열시가 조금 지난 때, 국회의사당(중앙청 홀)에 모인 198명의 제헌의원들은 제1차 회의에 들어갔다. 국회선거위원회 사무총장 [[전규홍]](뒤에 국회사무총장)의 성원 보고에 이어 [[노진설]] 국회선거위원장 (뒤에 심계원장)이 최고연장자인 [[이승만]]을 임시의장으로 추대할 것을 제의하자 의원들은 박수로 환영했다. 이승만은 "나는 먼저 우리가 성심으로 일어서서 하나님에게 우리가 감사를 드릴터인데 [[이윤영]]의원 나오셔서 간단한 말씀으로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려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 |url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041900209204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3-04-19&officeId=00020&pageNo=4&printNo=15859&publishType=00020 |제목 = 秘話 第一共和國 <8> 第二話 憲法制定에서 組閣까지 |출판사=동아일보 | 작성일자 =1973-4-19 }}</ref> 제헌국회는 [[5월 31일]] [[이승만]]을 초대 국회의장으로, [[신익희]]를 부의장으로 선출하였다. [[6월]] 초, 국회헌법기초위원회에 헌법 초안이 제출되었다. 헌법 초안은 [[이승만]]도 포함한 모든 정파들이 동의한 의원내각제를 채택했는데, [[6월 15일]] [[이승만]]이 돌연 기초위원회에 나타나 의원내각제를 대통령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7월 17일]] 헌법을 제정, 공포하였으며 [[7월 20일]] 제헌국회 국회의원들의 간접선거에 의한 [[1948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제1대 대통령 선거]]로 이승만 후보를 초대 대통령으로, 이시영 후보를 부통령으로 선출했다.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에 반대한 김구, 김규식은 불참했다.
 
=== 대한민국 정부 수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