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바뀜

16 바이트 제거됨, 4년 전
자는 운경(雲卿)이며 호는 매천(梅泉)이다.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10|9|7|1855|12|11}}
| 사망지 = {{국기나라|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구례군]]<br /> (現 {{국기|대한민국}} [[전라남도]] [[구례군]])
| 별칭 = 자(字)는 운경(雲卿) <br /> 아호(號)는 매천(梅泉)
| 직업 = 유학자, 시인, 문장가, 역사가
| 부모 = 황시묵(부)
== 생애 ==
[[File:Portrait_of_Hwanghyeon.jpg|thumb|left|200px|[[채용신]]이 그린 황현의 초상화]]
본관은 [[장수 황씨|장수]](長水)이고 자(字)는자는 운경(雲卿)이며 호(號)는호는 매천(梅泉)이다. 사학자 [[황의돈 (사학자)|황의돈]](黃義敦)은 그의 7촌 재종질이다. 그는 [[전라도]] [[광양시|광양]] 출생으로, [[구례군|전라도 구례]]에서 성장했다. [[1892년]] 봄 [[운현궁]]에서 화약이 터지고 여러 건물에 장치된 화약이 발각된 사건이 발생했다. 황현은 [[명성황후]]를 배후로 지목했다. 그에 의하면 이 사건은 명성황후가 [[흥선대원군]] 일가를 폭살하기 위해 벌였다.<ref>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한영희 발행, 2007.4, 경인문화사) 315p</ref> [[생원시 (조선)|생원시]]에 합격했으나 낙향하여 제자를 양성하며 지내다가,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을 통탄하며 조약 체결 16일 후 [[구례군]] 자택에서 음독 자살했다<ref>[[이덕일]] 의《근대를 말하다》중에서 [[김택영]], [[황현]] 및 [[이건창]] 등이 [소개된 부분 http://blog.city.go.kr/aswook/107748]</ref>. 자결하면서 남긴 〈[[절명시]](絶命詩)〉는 [[장지연]](張志淵)이 주필로 있던 《[[경남일보]]》에 실렸고, 이는 [[경남일보 필화 사건]]의 원인이 됐다.
 
== 과거 급제 ==
익명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