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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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뜻 설명|박정희 정권 때 일어난 김대중과 관련된 사건에 대해서는 [[김대중 납치사건]]을 참조하시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金大中內亂陰謀事件)은 [[1980년]] [[신군부]]세력이 [[김대중]]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가 20여 명을명이 북한의 사주를 받아 내란음모를 계획하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광주 민주화 운동]]을 일으켰다는 혐의를 조작해, [[군사재판]]에 회부한 사건이다. 2004년 김대중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 신군부의 정치인 체포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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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국과 가택 연금 ==
미국으로 출국한 김대중은 일체의 정치 활동을 안하기로 전두환 정부와 약속하였으나약속했으나, 얼마 못가 미국 내의 정치인들을 만나며 한국의 정치 현실에 대해 강력한 성토를 하는 등 전두환 정부에 대해 독재 정권이라는 비난을 하였다했다. 그리고 1985년 [[대한민국 제12대 총선|12대 총선]]을 앞두고 한국에 귀국하겠다는 발표를 하였다했다.
 
전두환은 격노하며 김대중 입국을 저지하도록 안기부에 지시하였고지시했고, 미국 정부와 정치인들 역시 불과 2년 전인 1983년 여름 [[필리핀]]의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가 마닐라 공항에 입국하는 순간 마르코스 독재 정권에 의해 암살되었음을 상기하며 김대중을 적극 만류하였다만류했다. 그러나 김대중은 조국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면서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귀국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이에 최창윤 당시 대통령 정무비서관은 1985년 1월 23일자 뉴욕타임즈와의 회견에서 김대중이 귀국할 경우 남아있는 형기를 다시 집행하기 위해 교도소에 재수감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미국 정부는 전두환 정권이 김대중의 무사 귀국을 보장하지 않을 경우 1985년 4월로 예정된 전두환의 방미를 백지화시킬 수 있다는 경고를 서울에 전했고, 이에 당황한 전두환 정권은 주미 한국대사관을 통해 최창윤의 발언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닌 개인적인 의견일뿐이라는 해명자료를 내놓았다. 또한 미국 국무부가 김대중을 강사로 초청하여 직원들에게 한국의 민주주의 등을 주제로 강연하도록 주선하면서 전두환 정권에 대한 미국의 압력은 점점 더 거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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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1985년 2월 8일 김대중은 2년 2개월만에 고국 땅을 밟게 되었다. 이미 전두환 정권이 김대중에 대해 가택 연금 외에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미국 인사들은 여전히 전두환 정권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는지 민주당 에드워드 페이언(Ed Feighan), 민주당 토머스 폴리에타(Thomas M. Foglietta) 하원 의원을 비롯한 여러 미국의 저명 인사들이 김대중과 함께 비행기에 탑승하여 김포공항 입국장까지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러나 입국장에 들어서는 순간 기다리고 있던 안기부 요원과 경찰이 김대중 부부를 강제로 끌고 지하로 이동해 안기부 버스에 태웠고, 이를 저지하려던 미국 인사들과 안기부 요원들이 충돌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특히 당시 주한 미국 대사관은 이원경 당시 외무부 장관과의 협의를 통해 김대중이 귀국할 경우 미국 대사관 1등 서기관이 영접하고 대사관 관용차편으로 동교동 자택까지 동행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김대중의 귀국 당일 안기부의 방해로 미국 대사관 관계자들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뒤늦게 김대중의 동교동 자택에 도착한 미국 인사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전두환 정권을 비난하였고비난했고 특히 [[엘살바도르]]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로버트 화이트는 "서울 올림픽 때 미국인들이 안전하게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는지를 재고해야 한다."는 발언까지 할 정도였다.
 
미국 정부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미국 국무부는 김포공항에서의 소동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고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였으며요구했으며, 미국 대사관도 이원경 외무부 장관에게 합의 파기에 대한 사과와 해명을 요구하면서 전두환의 방미를 앞두고 한미간에 심각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였다발생했다. 특히 미국 정부가 전두환 정권을 직접 비난한 것은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ref>{{뉴스 인용
| 제목 = 남산의 부장들 (182) 全씨 訪美와 바꾼 「金大中 귀국」
| 저자 = 한기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