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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초기 함흥 일대는 여진족과 외적의 침입을 막는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고, 태조 이성계가 임금의 지위에서 물러나서, 1403년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조선시대 후기와 [[대한제국]] 시기에 함흥시는 함경남도에[[함경남도]]에 소속되었고, 함경남도청 소재지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1930년 함흥군 함흥면이 함흥부로 승격되었다. 광복전에는 [[일본인]] 거주지였다.
 
[[1941년]] [[4월 1일]] [[함주군]] 주서면 일부 등을 편입하였다.<ref>조선총독부령 제84호 ([[1941년]] [[3월 26일]])</ref>
| 동천면 하수리, 상수리, 부평리, 회양리, 경흥리, 심동리
|}
그 후 [[1945년]] [[8월 15일|8월15일]] 일본의 항복으로 해방이 되면서, [[소비에트 연방]]의 관할지역으로 되어 있었다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1948년]] [[9월 9일]]에 건국하고, [[지방행정개혁]]을지방행정 개혁을 실시하면서 [[함경남도]] 도청소재지가소재지가 되었다.
 
함흥시는 [[한국전쟁]] 때 공공시설과 수많은 주택이 파괴되고 막대한 손실을 입었는데, [[천리마운동]] 때 2차선도로를 구축하고 고층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새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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