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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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김중경이 화랑이 되었을 때 친모 성정왕후와 성덕왕 사이에 후궁 문제로 갈등이 일어나 세속의 생활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719년 [[당 고종]] 영회4년(653년)721년 24세의 나이로 신라를 떠나 당나라 건너가 출가하여 불교에 귀의하였다.
 
이후 [[구화산]]에 자리를 잡고, 구도 활동을 하다가, 구화산에서 75년을 수련하여 99세에 열반에 들었다. 794년 제자들을 모아놓고 고별인사를 한 뒤 입적하였는데, 자신의 시신을 석함에 넣고 3년 후에도 썩지 않으면 [[등신불]]로 만들라는 유언을 남겼다. 열반에 든 후 산이 울면서 허물어 졌고 하늘에서는 천둥소리가 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