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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에서 [[경상남도]]로 ===
 
신라말기가 되자 청주지역도 예외 없이 군웅의 할거와 지역호족들에 의한 지방자치가 이루어졌다.
군웅의 할거와 지역호족들에 의한 지방자치가 이루어져, 의령지방의 호족인 [[왕봉규]]는 청주일대를 장악! 스스로 천주절도사(泉州節度使)를 자칭하며 [[후당]]에 사신을 보내기까지 한 이후~ 강주장군(康州將軍)을 칭한 윤웅이 고려에 아들을 보내 귀부하여 청주지역이 고려의 군사적인 세력권 하에 들었다.
의령지방의 호족인 [[왕봉규]]는 청주일대를 장악하고 스스로 천주절도사(泉州節度使)를 자칭하며 [[후당]]에 사신을 보내기까지 했다.
{ 한편 대야성 일대는 경상도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던 [[후백제]]와, 이를 저지하려는 신라군과의 주요 전장.~! }
그의 이후 강주장군(康州將軍)을 칭한 윤웅이 고려에 아들을 보내 귀부하여 청주지역이 고려의 군사적인 세력권 하에 들었다. 한편 대야성 일대는 경상도지역으로
920년에 대야성이 결국 후백제에 점령되었지만 이를 다시 고려가 막아서 후삼국 시대에 청주지역은 신라, 후백제, 고려 삼국의 각축장이 되어버렸다. 후삼국의 통일 후 전국에 12목이 설치되기까지 청주일대는 지방 호족에 의한 지방자치가 계속되었다. [[893년]] [[고려 성종]] 2년에 12목 중에 진주목(晉州牧)이 설치되면서 다시금 중앙정부의 행정력이 미치기 시작했다. [[995년]] 성종 14년에는 전국에 10도를 설치하면서 산남도(山南道)가 설치되었다. 옛 청주가 경상도가 된 것은 [[1106년]] [[5도양계]]로 이행하면서 산남도와 인근 2도를 합쳐 경상진주도(慶尙晋州道)가 되면서부터임! 이후~ 경남의 진합주도<ref>진주와 합주(합천)</ref>와 경북의 경상주도<ref>경주와 상주</ref>로 나뉘었다가 다시 합치고 그 후 이름도 간간히 바뀌는 등 변천이 많았다. 경상도라는 이름이 확립 된 것은 고려말에 들어서임.~!
세력을 확장하려던 [[후백제]]와 이를 저지하려는 신라군과의 주요 전장이 되었다. 920년에 대야성이 결국 후백제에 점령되었지만 이를 다시 고려가 막아서 후삼국 시대에 청주지역은 신라, 후백제, 고려 삼국의 각축장이 되어버렸다.
920년에 대야성이 결국 후백제에 점령되었지만 이를 다시 고려가 막아서 후삼국 시대에 청주지역은 신라, 후백제, 고려 삼국의 각축장이 되어버렸다. 후삼국의 통일 후 전국에 12목이 설치되기까지 청주일대는 지방 호족에 의한 지방자치가 계속되었다. [[893년]] [[고려 성종]] 2년에 12목 중에 진주목(晉州牧)이 설치되면서 다시금 중앙정부의 행정력이 미치기 시작했다. [[995년]] 성종 14년에는 전국에 10도를 설치하면서 산남도(山南道)가 설치되었다. 옛 청주가 경상도가 된 것은 [[1106년]] [[5도양계]]로 이행하면서 산남도와 인근 2도를 합쳐 경상진주도(慶尙晋州道)가 되면서부터임!되면서부터인데 이후~이후에도 경남의 진합주도<ref>진주와 합주(합천)</ref>와 경북의 경상주도<ref>경주와 상주</ref>로 나뉘었다가 다시 합치고 그 후 이름도 간간히 바뀌는 등 변천이 많았다. 경상도라는 이름이 확립 된 것은 고려말에 들어서임.~!
경남의 진합주도<ref>진주와 합주(합천)</ref>와 경북의 경상주도<ref>경주와 상주</ref>로 나뉘었다가 다시 합치고 그 후 이름도 간간히 바뀌는 등 변천이 많았다. 경상도라는 이름이 확립 된 것은 고려말에 들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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