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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이 되자 군웅의 할거와 토착호족에 의한 지방자치가 시작되었다. 지금의 안성일대인 [[죽산군|죽주]]에서는 기훤(箕萱)의 세력이 웅거하고 있었고 패서일대에서는 [[박지윤]]과 [[유천궁]], [[고려 세조|용건]]등의 호족들이 군집하고 있었다. 특히 박지윤은 그 출신이 신라왕실의 후손임에도 고구려의 장군인 대모달(大模達)을 자칭하고 있을 만큼 이 지역은 반 신라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중에 [[궁예]]는 자신의 새나라를 세우면서 이점을 적극 활용해 [[후고구려|고려]]를 칭했다. 궁예는 처음에 패서일대인 개성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워 한반도의 중부지역을 차지했다가 나중에 철원으로 옮겨 마진,태봉으로 바꾸고 과도한 중앙집권제를 추구하는 등 패서호족의 반감을 사서 결국 [[고려 태조|왕건]]에게 나라를 뺐기고 [[명성산]](鳴聲山)에서 패사했다. 왕건의 고려는 다시 패서지역에서 후삼국 통일의 기반을 닦았다.
983년 [[고려 성종]]2년에 12목이 설치되면서 옛 한산주에는 양주(楊州)·광주(廣州)·해주(海州)·황주(黃州)의 4주가 설치되었고, 995년(성종 14년)에 10도를 두면서 관내도(關內道) 설치되었다. 5도 양계로 이행한 후 관내도는 개경일대의 경기를 제외하고 [[양광도]]와 [[서해도]]로 분할되었다. 조선시대에 각각 지금의 경기도와 황해도가 되었다.
 
== 소속 군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