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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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대방은 원래 [[기원전 108년]]에 설치된 진번군의 현(縣)이었다. 진번군에는으로, 15개 현이 소속되어 있었는데 있었다.
토착민들의 저항으로 인해 기원전 82년에 진번군이 폐지되면서 소속 15개 현 가운데 7개 현만 편입되고 편입되었고,
나머지 8개 현은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ref>[http://100.nate.com/dicsearch/pentry.html?s=B&i=190844&v=43 브리태니커 백과사전]</ref> 낙랑군은 편입된 진번군 지역을 관할하기 위해 남부도위(南部都尉)를 설치하여 7개 현을 관할하게 하였다. 7개 현 가운데 하나가 대방현으로 남부도위의 중심지였다.
 
* 낙랑군 일대는 [[2세기]] 말에 요동 일대의 군벌 [[공손탁]]의 세력에 속했다. 공손탁의 뒤를 이은 공손강은 204년에 [[삼한|한]](韓)과 [[동예|예]](穢)가 강성해지면서 변경을 위협하자 이를 견제하고자 남부도위 관할의 7개 현을 낙랑군에서 분할하여 대방군을 설치하고 공손모(公孫模)·장창(張敞) 등을 파견하여 삼한으로 유망하는 유민(流民)을 막았다. [[위 (삼국)|위]](魏)가 건국된 후 [[조예|명제]](明帝)는 [[사마의]](司馬懿)를 파견하여 [[공손연]](公孫淵)을 토벌하였는데, 낙랑·대방에 별도로 유흔(劉昕)과 선우사(鮮于嗣)를 파견하여 점령하였다.(238년)
 
* [[서진]](西晋)이 건국된 이후 백제 및 고구려의 공격이 가속화되어, 낙랑 및 대방군은 점차 약화되었다.
[[오호 십육국 시대]]의 혼란으로 서진이 몰락하자 낙랑군과 대방군도 쇠퇴하여 [[313년]]에 ~
낙랑군이 고구려에 정복되었고, [[314년]]에 대방군도 고구려에 의해 멸망하였다.멸망한 이후 대방군 지역은 고구려와 백제가 지배하였다.,
대방군 지역은 고구려와 백제가 지배하여, 이후 요동지역에 자리잡던 선비족 모용씨(慕容氏)가 ~
요서 대릉하 부근에 대방군(帶方郡)을 다시 설치하였다가, 430년 북위(北魏)에 의해 폐지되었다.
 
== 위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