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1916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14번째 줄:
수감 기간 중에 전향을 권유받았다. 김종호의 [[김해 김씨]] 친척과 김천고보 동창 가운데는 성공한 인물이 많아 회유하기도 했었고 형과 조카딸이 김종호를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감옥살이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으나 신념을 굽힐 수 없다면서 전향하지 않았다.
 
[[1991년]]에 회복 가능성이 없는 노약자로 분류되어 약 30년간 수감 생활을 마치고 [[허영철 (1920년)|허영철]]과 함께 출소하였다. 김종호는 가정이 북조선에 있어 마땅히 갈 곳이 없었고 고령에 건강도 좋지 않았다. [[양로원]]을 거쳐 인권운동가가 도와줘서 거주지를 마련하였고 출소한 비전향 장기수 가운데 젊은 층에 속하는 [[김창원 (1934년)|김창원]]에게 간호받으면서 생활하였다.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의거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되어 가족과 다시 만났다. 송환 3년 후인 2003년에 송환된 장기수 가운데 네 번째로 서거하였다사망하였다. 송환 직후 다른 장기수들과 함께 [[조국통일상]]을 받았고 서거사망 후에는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 문학 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