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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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상륙 당일인 [[1945년]] [[4월 1일]] 오전에 주력 4개 사단이 [[오키나와 섬|오키나와]] [[가데나 만]]으로 순조롭게 상륙하였다. 미군은 일본군의 아무 저항 없이 광대한 오키나와 북부 지역을 장악했고 상륙 며칠 동안은 일본군은 나타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본군들은 주로 남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4월 5일]]부터는 미군이 방심을 한 사이에 일본군의 사령부 [[슈리 성]]에서 무수한 동굴 진지가 미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미군은 수류탄과 화염발사기로 동굴 진지를 하나 하나 제거했고 제거하는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4월 7일]]에는 [[이토 세이이치]] 함장이 이끄는 7척의 남은 [[연합 함대]]와 그 당시 가장 큰 전함 [[야마토 (전함)|야마토]]가 [[오키나와]] [[보우노사키 해협]]에서 미군 전투기들과 급강하폭격기로 격침 당했다. 일본군은 미군이 방어선을 뚫을때가지 싸우고, 뚫으면 다음 방어선 으로 후퇴를 했다. 즉 미군은 하나씩 점령을 해야 했다. 미국은 남쪽을 점령하기가 너무 어려워지자 섬의 북쪽에도남쪽에도 상륙을 했다.
 
미군과 일본군 양측 모두 처참한 전투 끝에 [[5월 29일]] 미군이 슈리 성을 함락시켰고 [[5월 31일]]에 일본군은 전력의 85%를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