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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메노 시몬스===
메노나이트 교회의 시작은 [[1525년]] [[1월 21일]], 신자의 세례 (believer's baptism)가 시행된 16세기 [[재세례파재세례신앙]] 운동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메노나이트라는 이름은 [[네덜란드]] [[로마 가톨릭 교회]] [[사제]]로 사목했던 메노 시몬스(Menno Simons, 1496~1561)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는 [[로마 가톨릭 교회]] [[사제]]였지만, [[종교개혁]]에 가담하여 [[재세례파]]의 교리를 [[유아세례]] 불인정, 개인의 [[종교의 자유]] 인정 등으로 정리하였다. 또한 [[신약성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폭력]]에 반대하는 [[비폭력주의]]를 주장하였다. 하지만 재세례신앙운동은 [[1600년]]까지 1만명의 [[순교자]]를 낼 정도로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재세례신앙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는 메노나이트도 탄압받았다.
===해외에서의 정착===
그래서 일부 [[유럽]]의 메노나이트 신자들은 [[미국]]으로 [[이민]]가거나, 러시아의 농업 발전을 위해 정책적으로 메노나이트의 [[종교의 자유]]를 존중하기로 했던 [[예카테리나 대제]]가 다스리는 [[제정 러시아]]에 정착하였다. 이들 중 [[미국]]에 이주한 이들은 [[독일어]] [[방언]]이라는 그들의 [[문화]]를 갖고 있으며, [[미국 독립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당시 종교적 [[비폭력주의]](기독교 평화주의)에 근거,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해 갈등을 겪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의 [[진보]]적인 지식인인 [[하워드 진]]에 의하면 [[제1차 세계대전]]당시 메노나이트와 [[러시아 정교회]]내 평화주의교회인 [[두호보르파]]등의 [[비폭력주의]]를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은 감옥에 갇히는 탄압을 받았다. 물론 고난과 박해의 시절을 거쳐 지금은 [[대체복무제]]를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