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크 입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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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입센이 이탈리아로 향한 년도가 1964년이라고 되어있음. 1864로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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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
1862년 노르웨이 극장은 경영난으로 폐쇄당하였고 몇 번인가 신청한 예술가 연금도 국가로부터 거부당했다. 63년에 주어진 약간의 여비와 비외른손 등의 원조로 입센은 1964년1864년 4월에 조국을 떠나 [[이탈리아]]로 향했다. 이후 27년 동안을 두고 그는 몇 차례의 짤막한 귀향 기간을 제외하고는 노르웨이에 돌아가지 않았다. 주로 [[독일]]과 이탈리아에 머무르며 극작생활에 전념했다. 입센이 외국에 가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된 것은 1864년에 덴마크가 독일, 오스트리아와 승산 없는 전쟁을 했을 때 노르웨이가 참전하지 않고 우방을 돌보지 않았던 점에 있었지만, 그 밑바닥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것은 소년시절에 자랐던 고향에 대한 소외감과 반감에 있었다.
 
노르웨이를 떠나기 전에 쓴《왕위를 노리는 자들(Kongs-Emnerne, 1863)》은 셰익스피어적 수법이 엿보이는 역사극으로서 그때까지의 입센 작품 가운데 최고 걸작이다. 두 사람의 인간의 대립, 그리고 입센의 경쟁자 비외른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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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뒤에 독일로 옮긴 입센은 운문을 완전히 포기하고 만다. 일반적으로 《페르귄트》까지를 입센의 극작 제1기로 삼으며 이때부터 69부터는의 <청년동맹(靑年同盟)>에서 시작되는 이른바 사실주의 시민극의 제2기로 들어가는 셈이다.
 
=== 현대사회극으로 전향하기 ===
[[비에른스티에르네 비에른손|비에른손]]이 1875년경 현대극을 쓰기 시작한 데 자극받아 입센은 1877년에 《사회의 기둥(Samfundets Støtter, 1877》을 쓰고 이를 계기로 현대사회극으로 전향했다. 소년시절부터 반사회적 경향이 있었던 입센은 외국에서 고향의 시민사회를 날카롭게 관찰하여 '자기 해부'를 시도하는 마음으로 철저히 분석하고 해독의 근원을 탐구·적출(摘出)하여 독자·관객에게 제시했다. '인간 정신의 반항'을 지상목표로 삼고 급진적인 입장에서 개인의 해방을 가장 큰 목표로 삼고 가차없이 사회를 규탄하였으므로 반사회극이라고도 했다. 이들 작품은 한 해 건너서 크리스마스 전에 발표되어 독일로부터 전 세계에 소개되었다. 그 시기가 되면 전 세계는 그 상연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