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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弓裔, [[857년]]<ref>[[헌안왕]]의 아들이라는 경우</ref>/[[869년]]<ref>[[경문왕]]의 아들이라는 경우</ref> [[음력 5월 5일]] ~ [[918년]] [[7월 24일]], 재위: [[901년]] [[7월]] ~ [[918년]] [[7월 24일]]([[음력 6월 14일]]))는 [[신라]]의 왕가 서족(王家 庶族) 출신이며 [[태봉]]([[후고구려]], [[마진]])의 군주이다. 그는 [[신라 헌안왕]] 또는 [[경문왕]]과 후궁 사이에 태어난 유복자였다.<ref> 《[[삼국사기]]》권 제50 열전 제10 궁예편. 궁예에 관하여 가장 기본적인 사료로, 여기서 인용되는 문장은 특별한 표시가 없다면 이곳에서 인용된 것이다. </ref> [[장보고]]의 외손이라는 설도 존재 한다.<ref>{{웹 인용|url=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6789|제목=궁예|확인날짜=2013.9.5|작품명=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f> 그의 본래 속세 성은 '''김'''(金)씨, 본관은 [[경주 김씨|경주]](慶州), [[불교]] 승려로서의 법명은 '''선종'''(善宗)이고, 별명은 미륵(彌勒), [[일목대왕]](一目大王<ref name="cho01">http://newsplu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2/17/2008121701603_3.html</ref><ref>20세기 초의 사학자 단재 [[신채호]]가 붙인 별명이다.</ref>)이다. [[918년]] [[고려 태조|왕건]]에게 축출되었으므로 시호는 없다.
 
[[신라]] 왕실의 서자(庶子)로 왕위계승권에서 밀려난 뒤, 유모에 의해 피신되어 죽음을 모면하였고 이후 세달사로 피신하였다가 [[통일신라]] 말기의 혼란기에 자립하여 사병을 모으고 호족이 되었다. [[892년]] 스스로 왕을 칭하고 [[900년]] [[철원군|철원]]에 도읍을 정하고 [[후고구려]]를 건국하였다. 뒤에 국호를 [[마진]], [[태봉]] 등으로 변경하였으나 호족들과 갈등하던 중 [[918년]] 시중 [[고려 태조|왕건]]을 추대한 부장들에 의해 축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