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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록=[[영국의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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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lang|en|Anne}}, [[1665년]] [[2월 6일]] - [[1714년]] [[5월 1일]], 재위 [[1702년]] [[4월 23일]] -~ [[1714년]] [[5월 1일]])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동군연합의 마지막 [[여왕]]이자 최초의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여왕 및 [[아일랜드]]의 여왕이다.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군주이기도 하다. [[브랜디]]를 좋아하여 ‘브랜디 낸(Brandy Nan)’으로도 알려져 있다.
 
== 생애 ==
=== 즉위 이전 ===
==== 성장시기 ====
[[1665년]] 요크 공작 제임스(나중의 [[잉글랜드의 제임스 2세|제임스 2세]])와 그 아내 공비 앤의 차녀로 태어났다. 앤은언니는 [[잉글랜드의 메리 2세|메리 2세]]의 동생이다이다.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 신자로 자랐지만 [[교육]]은교육은 그다지 많이 받지 못하였고, [[독서]]나독서나 [[예술]]보다는예술보다는 [[스포츠]]나스포츠나 [[승마]]를승마를 좋아했다. 요크 공작 궁정의 [[궁녀]]로 후에 [[말버러 공작 1세 존 처칠|말버러 공작]]부인이 되는 [[말버러 공작부인 사라 처칠|사라 제닝스]]는 소녀 시절부터 친한 친구였다.
 
==== 불행 ====
[[1683년]] [[7월 28일]]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5세]]의 남동생인 [[덴마크의 조지|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왕자 요르겐]]([[1653년]] - [[1708년]])[[결혼]]했다결혼했다. 그들앤은 남편과의 부부는사이에서 모두 19명의 아이를 [[임신]]했지만임신했지만 14명이 유산(또는 상상임신)이나 사산으로 죽었고 2명은 태어난 그 날 중에 사망하였으며 나머지 3명도 10살까지 살지 못하는 불행을 겪었다.
 
==== 명예혁명 ====
[[1688년]] [[명예 혁명]]에서 형부인 [[네덜란드]]의 [[잉글랜드의 윌리엄 3세|오라녜 공 윌리엄]]이 [[잉글랜드]]에 상륙하자 윌리엄에게 투항했다. 제임스 2세가 추방되어 언니 메리와 그 남편 윌리엄이 [[메리 2세]]와2세와 [[윌리엄 3세]]로서3세로서 공동 통치자로 즉위하였지만, 사이가 나빴던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왕위 후계자로 주목받게 되었다.
그러나 [[1692년]] 제임스 2세가 총애하던 신하였던 장군 [[말버러 공작 1세 존 처칠|말버러 백작 존 처칠]]이처칠이 옛 주인 제임스와 극비리에 통신한 의혹을 받아 투옥되었을 때 말버러가 앤의 친구 사라의 남편이었기 때문에 앤은 그 투옥에 반대하여 메리 여왕과 사이가 벌어졌다. 이 사건 이후 앤은 메리 여왕과 관계를 끊었다.
 
=== 재위 기간 ===
==== 즉위 ====
[[잉글랜드의 메리 2세|메리 2세]]는2세는 [[1694년]] 이미 사망했고, [[1702년]]에 단독 통치를 계속하고 있던 [[잉글랜드의 윌리엄 3세|윌리엄 3세]]가3세가 죽으면서 앤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여왕으로 즉위했다. 즉위식 때 "나의 모든 정성을 오로지 영국을 위해 바치겠노라"고 하여 국민의 갈채를 받았다. 부군이었던 [[덴마크의 조지]]는조지는 여왕의 배우자로서의 지위가 주어져서 통치자로서의 군림은 실시하지 않았다.
 
==== 전쟁 ====
앤 여왕이 즉위 했을 때 선왕의 생전시 시작된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본격화되어 잉글랜드는 [[네덜란드]]와네덜란드와 함께 오스트리아와 동맹하여 [[프랑스]] 및 스페인과 싸우게 되었다. 앤 여왕은 친구의 남편 말버러 백작을 잉글랜드군 총사령관에게 임명하여 [[플랑드르]]·[[독일]]에 파견하였고 말버러 백작의 친구 [[시드니 고돌핀]]을 백작으로 임명하여 전쟁을 수행시켰다.
 
말버러 백작은 네덜란드 전선(현재의 [[벨기에]])에서 큰 전공을 세웠고, 앤 여왕은 그를 말버러 공작으로 서임했다. [[1704년]]에는 말버러 공작은 남 독일에서 행해진 [[블렌하임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치는 대전과를 얻었고 그 후에도 플랑드르 방면에서 전승을 거듭했다.
 
또 [[스페인]]과의 싸움에서는 영국 함대가 스페인의 [[지브롤터]]를 함락 시켰다. 북아메리카의 식민지에서 펼쳐진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은 [[앤 여왕전쟁]]으로 불리고는 있지만 아직 통일된 용어는 아니다.
 
==== 스코틀랜드와의 합병 ====
전쟁 중이었던 [[1707년]] [[5월 1일]]에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양국의 [[1707년 연합법|연합법]]이 체결되어 제임스 1세이래 100년에 걸쳐 [[동군연합]]으로 묶여 온 양국은 정식으로 통합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되었고 앤 여왕은 그 최초의 군주가 되었다.
=== 말년 ===
==== 말버러 공작의 실각 ====
말버러 공작 부인이 된 앤 여왕의 친구 사라는 여왕의 측근으로 남편의 대변자가 되어 계속해서 전쟁을 수행할 것을 여왕에게 조언했지만, 점차 여왕은 평화 추진파에게 마음이 기울기 시작하여 결국 사라를 싫어하게 되었다. [[1710년]] 앤 여왕은 마침내 사라를 궁정으로부터 추방한다. 또 같은 해에 행해진 선거 결과 평화 추진파의 보수당이 정권을 차지했다. 이 사건의 결과로 말버러 공작의 군자금 횡령 의혹의 조사를 하였고 다음 해에 횡령이 보고되어 말버러 공작은 실각하였다. 주전론자 말버러의 실각으로 스페인 계승 전쟁은 평화교섭이 개시되어 [[1713년]]에 [[위트레흐트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으로 영국은 [[지브롤터]] 등의 여러 해외 영토를 획득하여 현재까지 영유하고 있다.
==== 후계자 ====
또 앤 여왕에게는 성년의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앤의 즉위 전부터 장래, 왕의 후계자 문제가 되었다. 앤 여왕에게는 아버지 [[제임스 2세 (잉글랜드)|제임스 2세]]를2세를 따라 프랑스에 망명한 이복 남동생 제임스가[[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제임스]]가 있었지만 그는 로마 가톨릭 신자였으므로, 전제 부활을 경계하는 개신교도 중심의 의회 세력은 그의 즉위를 바라지 않았다. 그리하여 스튜어트 왕조의 피를 이을 개신교도인 제임스 1세의 외손녀 [[팔츠의 조피|소피아]](하노버 선제후 왕비 조피아조피, 앤 여왕에게는 내척되는 5촌아주머니5촌 아주머니)의 자손이 계승자가 되어야 할 것을 정한 법률이 의회에서 제정되었다.
==== 죽음 ====
앤 여왕이 [[1714년]]에 사망하자 내종오촌 조피아의조피의 장남인 하노버 선제후 [[그레이트브리튼의 조지 1세|게오르그 루트비히]]가 조지 1세로서 즉위함으로써 스튜어트 왕조는 단절했다.
 
앤은 비만 체질로 어디를 가더라도 가마를 타고 다녔고 만년에는 전혀 걸을 수가 없을 정도로 비만이 진행되어 궁전 내를안을 이동할 때도 휠체어를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1714년]]에 사망했을 때에 관이 정방형이었다고 전해진다.
 
==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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